北,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 전격 공개 "대선 앞둔 미국 압박" 관측
2024.09.13 12:53
수정 : 2024.09.13 15:28기사원문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전격 공개하며 대남 핵 능력 과시와 동시에 대선을 앞둔 미국에 압박을 가하고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총비서가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찾아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이들 시설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인 HEU의 대량 생산 능력을 과시하며 미국에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개된 사진으로 미루어 핵폭탄의 재료인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한 원심분리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무기를 추가 확보하기 위해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장할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된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 총비서가 원심분리기가 수백 개 이어 붙어있는 캐스케이드를 둘러보는 모습이 담겼다. 원심분리기는 고속 회전에 따른 원심력을 이용해 핵폭탄에 필요한 고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장치이고, 캐스케이드는 원심분리기를 수백~수천 개 이어 붙인 것이다. 캐스케이드 단계를 많이 거칠수록 고농축 HEU가 된다.
김정은은 원심분리기들과 각종 수감 및 조종장치 등 모든 계통 요소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연구개발 도입해 "핵물질 현행 생산을 줄기차게 벌여나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북한은 원심분리기는 높이 2m가량인 파키스탄형 'P1', 'P2' 모델로인데 이번에 공개된 원심분리기 그 보다 작은 걸로 봐서 북한이 자체적으로 개량형을 만든 것으로 관측되며 북한이 독자적인 원심분리기 기술을 갖춘 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1990년대 이후 파키스탄과의 핵 협력인 '칸 네트워크'를 통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칸 네트워크는 파키스탄 핵 개발을 주도한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 기술을 이란·북한 등에 전달한 게 밝혀지면서 붙여졌다.
북한이 HEU 확보를 목적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02년 10월로 북한의 HEU는 비핵화 협상의 '딜 브레이커'(협상의 결렬요인)로 작용해 왔다.
당시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원심분리기 제작에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관의 통관 자료 등을 제시하며 의혹을 제기하자,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고 발언했다.
북한은 이후 UEP 존재를 부인했지만, 미국 측은 이를 믿지 않았고 결국 2차 북핵위기로 비화하며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는 백지화됐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2010년 11월이다. 북한은 당시 미국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 핵 단지에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줬다.
헤커 박사는 북한이 영변에서 약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중이라고 밝혔다. HEU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협상이 결렬된 주요 요인으로 알려졌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개된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새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가 사라진 상황에서 향후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한 군축협상'을 진행하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측에는 '전략적 인내'로 대표되는 현 정책 기조를 고집해선 문제가 풀리지 않으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도 과거와 같은 비핵화 협상은 더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능력 과시가 현 바이든 정부의 한반도 정책 실패를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에 대한 지원사격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7차 핵실험 대신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를 택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이번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로 대미 압박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만큼 향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거리 발사 등을 감행하며 도발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다양한 분석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