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 처분을 받은 소년의 수줍은 고백
2024.09.21 13:22
수정 : 2024.09.21 14: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비행소년이 소년재판을 받게 되면 불처분이 내려지지 않는 한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보호처분은 1호부터 10호까지 10종류의 처분이 있는데 대체로 높은 번호일수록 중한 처분으로 인식된다. 1호 처분은 비행소년을 보호자나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하는 위탁보호위원에게 소년의 지도·감독을 맡기는 처분이다.
6호 처분을 받게 되는 경우
위 각 처분에 대해서 할 얘기들이 많지만 오늘은 6호 처분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한다. 6호 처분을 받고 아동복지시설에 가게 된 소년들은 거의 99% 자신이 6호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1 내지 5호 처분과 달리 6호 처분부터는 시설에 입소하게 되므로 소년들의 행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불만의 주된 이유는 대체로 자신들은 6호 처분을 받을 만큼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판사가 잘못 판단해서 자신에게 너무 무거운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년들은 6호 시설 입소 후 2개월 정도 지나게 되면 시설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교육과 규칙적인 생활의 긍정적인 면을 맛보고, 소년원에 보내지 않고 6호 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판사에게 감사하게 된다. 소년부 판사는 법정에 서게 되는 소년들 한명 한명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비록 그 소년들이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소년이기 때문에 그 소년이 교화되어 바르게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대부분의 소년부 판사들은 소년재판을 통해 단 한 명의 소년이라도 비행의 늪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길 바랄 것이다.
6호 시설 방문과 퇴소 전 면담
내가 소년부 판사로 근무했던 수원가정법원은 6호 시설 퇴소 1달 전 무렵에 입소했던 소년들과 식사를 하는 형식으로 퇴소 전 법관 면담을 진행하였다. 이 제도는 수원가정법원에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엄상섭 변호사님이 시작하셨다고 한다. 처음 소년부 판사가 되었을 때 이러한 형식의 면담은 그야말로 나에게 충격적 사건이었다. ‘판사가 재판을 받는 당사자인 비행소년과 같이 식사를 한다고?’ 민사재판이나 형사재판에서는 재판장과 재판 당사자가 식사를, 그것도 재판 전후에 사석에서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년부 판사는 자신의 처분을 받은 소년들이 모여 사는 6호 시설을 직접 방문하여 소년들의 생활을 자세히 살펴본 후 이들을 혼내거나 격려하기도 한다. 형사재판을 하는 판사가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의 피고인이 복역하는 교도소에 찾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위와 같은 방문 절차 역시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소년부 판사의 역할은 전통적인 판사의 역할과 매우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의사나 선생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소년재판에서의 처분(1호~10호 처분)은 형벌이 아니다. 소년재판에서의 처분은 비행소년을 교화하고 성행을 개선하여 그들을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만드는 과정 중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퇴소 전 비행소년들과 함께 하는 식사 역시 업무의 연장이고 위에서 언급한 과정에 필요한 수단이다. 소년부 판사는 자신이 처분했던 비행소년들과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소년들의 변화된 모습과 재비행 방지에 대한 의지를 확인·관찰하고 평가한다.
수줍은 고백의 여운
소년부 판사로 근무할 당시 나로부터 6호 처분을 받은 소년 중 어떤 소년은 내가 내린 처분에 화가 났는지 6호 시설을 방문했을 때 내 눈을 피하며 인상을 쓰고 있었고, 판사와의 면담 시간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6호 시설 선생님들로부터는 그 소년이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만 만나면 영 표정이 밝지 않아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 퇴소를 며칠 앞두고 그 소년을 판사실에서 면담하였는데 그때도 좀 어색할 정도로 대화가 자주 끊겼다. 그렇게 어색하게 면담을 마치려는 찰나 그 소년이 판사실을 나가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판사님. 처음에 6호 처분하셨을 때 굉장히 화가 나고 미웠어요. 그런데 여기서 6개월 생활해 보니 저 자신에 대해 많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저는 예전의 나쁜 습관을 모두 없앨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소년의 고백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여운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소년재판을 하면서 가장 불편할 때는 법정에서 만난 소년의 교정에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처분이 별 효과가 없었을 때이다. 법정에서 처분을 받고 밖으로 나간 소년이 또 다른 비행을 저질러 다시 법정에 서게 되면 나의 처분이 그 소년에게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한 것 같아 괴로웠다. ‘어떤 처분을 해야만 이 소년이 변할 수 있을까? 어떤 처분이 이 소년에게 가장 도움이 될까?’ 늘 고민하는 것이 소년부 판사의 숙명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처분이 도움되었다고 인정하는 위 소년의 수줍은 고백은 잠시나마 소년재판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