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웹툰은 어떻게 글로벌시장을 장악했나
2024.09.22 19:30
수정 : 2024.09.22 20:24기사원문
#1.지난 8월 14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만들어졌다. 이날부터 시작하는 인기 웹툰 '외모지상주의' 10주년 기념 팝업스토어에 팬들이 몰리면서다. 지난 2014년 네이버웹툰에 처음 연재를 시작한 '외모지상주의'는 지난해 9월 글로벌 조회수 100억회(국내 52억회+해외 48억회)를 최초 달성했고, 현재도 추정 월간 조회수 3000만회를 기록하고 있는 메가 히트작이다.
#2. 이보다 앞선 지난 6월 27일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마음의 소리' 조석, '정글고등학교' 김규삼, '노블레스' 손제호 등 이른바 '웹툰 1세대 작가'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미국으로 날아온 이유는 네이버웹툰(현지법인명 웹툰엔터테인먼트)의 나스닥 직상장을 기념한 팬 사인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이날 미국 뉴욕 증시에 화려하게 데뷔한 웹툰엔터는 월가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며 거래 초기 14%까지 오르는 급등세를 보이다가 공모가 대비 9.5% 상승한 23달러에 첫 거래를 마쳤다.
"더 크고 강력해졌다" 진격의 K웹툰
K웹툰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콘텐츠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스토리산업의 원천(源泉)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웹툰은 웹툰 그 자체로 인기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드라마,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지식재산권(IP)을 확장해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거듭나고 있다. 또 웹툰의 영토를 국내에 국한하지 않고 일찌감치 글로벌화에 뛰어들어 '웹툰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사실 웹툰은 대한민국이 '재발명'한 문화상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지금은 보편적인 용어로 굳어졌지만, 웹(web)과 만화(cartoon)라는 말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웹툰(webtoon)'이라는 장르명도 사실 따지고 보면 '메이드 인 코리아', 즉 한국산이다. 당초 웹툰은 2000년대 초반 네이버, 다음(카카오)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들이 트래픽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만화를 무료로 서비스하던 것이 시초다. 하지만 K웹툰은 단순히 '웹에서 즐기는 만화'에 머물지 않고 여기에 각종 IT기술을 접목해 또 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남들이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만화를 볼 때 스마트폰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세로 스크롤 방식을 채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웹툰 시장은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초 내놓은 '2023 웹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웹툰산업의 총매출액은 1조829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해당 분야 조사를 처음 시작한 지난 2018년 이후 최대치로, 당시(3799억원·2017년 기준)와 비교해 5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또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업체 스카이퀘스트 테크놀로지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50억6000만달러(약 6조7940억원)로 추정되던 글로벌 웹툰 시장 규모는 연평균 36.8% 성장해 오는 2030년 849억3000만달러(약 114조355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유료화·영상화·세계화가 성공 견인차
국내 웹툰산업은 소비자와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유료화 △영상화 △세계화의 방향으로 성장을 견인해왔다. 이는 한국 웹툰산업이 '만화 같은 성공'을 이뤄낸 이유와도 정확히 겹친다. 다음웹툰은 사업 초기인 지난 2012년 연재 종료 후 수익의 90%를 작가에게 돌려주는 부분 유료화를 시도했고, 다른 플랫폼들도 프리미엄급 콘텐츠에 한해 과금(課金)하는 유료화 전략을 채택했다. 유료화 전략은 웹툰의 수익구조 다변화와 함께 시장의 확대를 가져왔고, 웹툰 플랫폼들이 다양한 산업적 시도를 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웹툰=공짜'라는 인식을 불식한 이 전략 덕분에 웹툰산업도 비로소 날개를 단 셈이다.
영상화를 통한 웹툰 IP의 무한 확장도 K웹툰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런 사실은 지금 당장 TV를 켜보면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데, 최근 2~3년 새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2022년)이나 디즈니플러스 '무빙'(2023년) 등이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10년 전인 지난 201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미생'을 비롯해 '신과함께'(2017~2018년), '킹덤'(2019년), '이태원 클라쓰'(2020년), '재벌집 막내아들'(2022년) 등도 웹툰에서 스토리를 가져와 흥행에 성공한 경우다. 웹툰 영상화는 웹툰 IP의 확장이라는 본래의 목적 외에도 원천 IP인 웹툰으로의 독자 재유입 및 유료 콘텐츠 구매 확대, 원작 작가들의 수익 증대라는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웹툰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다.
일찌감치 세계시장으로 영토를 확장한 세계화 전략도 주효했다. 10년 전인 지난 2014년 라인망가 등이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한 K웹툰은 현재 네이버 계열의 라인망가·웹툰엔터, 카카오 계열의 픽코마·타파스를 비롯해 코미코, 레진코믹스, 탑툰 등 플랫폼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콘진원이 올해 초 내놓은 '2023 웹툰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웹툰 업체의 절반에 가까운 43.6%가 해외 수출에 나서고 있으며, 해외서 발생하는 매출액은 일본(45.6%), 중화권(14.0%), 북미(13.5%), 동남아(12.7%), 유럽(11%) 순으로 많았다. 최근 네이버웹툰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볼 수 있듯, 국내 웹툰의 월간 유료 이용자(MPU) 수가 정체 또는 감소세로 돌아선 점 등을 감안하면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은 미래를 내다본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K웹툰,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일까. 지난 10여년간 산업화에 성공하며 '웹툰 종주국'으로 우뚝 선 우리가 이를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육성·유지하기 위해선 산업을 갉아먹고 있는 웹툰 불법 유통을 원천 차단하고 정부는 보다 과감한 투자와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웹툰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긴 하지만,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혁신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모든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웹툰산업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는 업계가 당장 해결해야 할 숙제다.
'2023 웹툰 실태조사'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국내 웹툰 불법유통 시장 규모는 7215억원(2022년 기준) 수준으로, 합법 시장 침해율이 무려 39.4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국내 웹툰산업(총매출액 1조8290억원)의 40%에 육박하는 웹툰 불법 유통시장이 국내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어로 서비스되는 경우만 따져본 것이어서 한국어가 아닌 타 언어로 서비스되는 불법 유통 사이트까지 고려한다면 전체 불법 유통 시장 규모는 이보다 휠씬 더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가 웹툰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올해 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만화·웹툰산업 발전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갖고 "슈퍼IP가 될 웹툰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게 만화·웹툰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마존·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이 시장에 들어오고 있는 이런 시기를 놓치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확실한 지원을 함으로써 웹툰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웹툰을 포함한 K콘텐츠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오는 2027년까지 5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정책들이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민과 관이 모두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지난 10년간 쌓아올린 웹툰 종주국으로서의 위상과 글로벌 주도권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