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세금? 뭣이 중헌디요"

      2024.09.30 06:53   수정 : 2024.09.30 06:53기사원문
리넘쳐나는 뉴스, 딱 '쓸만한 이슈'만 씁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이슈를 새로운 시선에서 뾰족하게, 삐딱하게 탐구합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15년간 함께 살았던 기자의 반려묘가 고양이 별로 돌아갔습니다.



성인이 된 후 가족과 떨어져 독립생활을 한 순간부터 줄곧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잠들고, 교감하던 작은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면서 느낀, 심연과도 같은 슬픔과 감회는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데요.

반려동물과 함께 한 경험이 없으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조금은 과장된 감정으로 비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던 보도, 반려동물의 과세 정책과 관련한 기사에 이어진 댓글들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는데요. 건강 보험료나 국민연금 인상 소식에 쿠데타라도 일으킬 듯 분노를 표출하던 네티즌들이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는 의견을 보인 겁니다.

사회로부터 나의 반려동물이 갖는 권리와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응당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인식이 커진 건데요. 한국 사회, 언제부터 이렇게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게 됐는지, 마음이 찡해져 울컥하고 말았지 뭡니까.

'물건'

지난 23일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제3차 동물복지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반려동물 보호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는데요. 반려동물 보유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윤 후보는 홍보 영상을 통해 " 동물을 등록하면 세금을 좀 내는 대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요.

'가족과도 같은 나의 반려동물을 위해 세금을 내고, 권리를 보장 받는 동시에 사회적 보호를 받는다'라는 취지는 일단 바람직합니다. 지난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는 전체의 25.4%인 602만 가구에 달하고요. 양육 인구 수는 15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펫팸족(반려동물(Pet)과 가족(Family)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하고, 국내 반려동물 관련 용품 시장 규모가 3년 내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현행법마저도 사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국민정서적으로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네, 이론상으로는 훌륭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은 곳이라서 그렇죠.

'버림'

반려동물 보유세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공의 동물보호센터 운영에 따른 사회적 비용 감소·반려동물 양육에 수반되는 책임감 강화 등의 장점과 같은 긍정적 측면이 많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현실적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 등이 찬반양론으로 부딪히고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쟁점은 유기동물의 증감여부일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정책 도입 시 양육자가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양육하는 행위에 대해 좀 더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감이 이전보다 강하게 실릴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전체 가구의 56%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독일의 경우 실제 보유세 도입 이후 유기동물이 줄었다는 통계 조사가 있기도 합니다. 현재 유럽에서는 연간 약 25만원 가량을 보유세로 납부하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버려지거나 잃어버린 유기·유실 동물은 11만3072마리로 집계됐는데요. 이기재 한국펫산업연합회 회장은 지난 24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유기견 중 80% 이상이 시골 마당에서 경비 목적으로 기르는 믹스견"이라며 "농촌에서는 노인들이 여러 마리 반려동물을 한꺼번에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취약계층으로 보유세 도입시 반려동물을 대량으로 버려서 유기동물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반려=함께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가정에서 양육하는 강아지와 고양이 등은 '반려동물'이 아닌 '애완(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동물'로써 구매해 키우는 대상에 불과했지요. 기자 또한 '강아지 한 마리 아프다고(죽었다고) 요란을 부린다'며 야단 맞던 시대를 살아왔고요.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외쿡 소방관' 아저씨의 모습이 전 세계에 공유되면서, 사회 구조와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로 1인 가구와 딩크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그리고 또 뛰어난 언변을 가진 어느 유명한 '반려견 전문가'의 조언과 호소가 마음에 와 닿으면서 생명에 대한 우리의 시선 또한 성숙해졌습니다.


'작은 생명을 향한 나의 사랑'이 존중 받고 보호 받는 사회가 된 겁니다.


이쯤에서, 특정 종에 치우친 반려동물의 생명권만을 중시하는가,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식용으로 도살 당하는 동물들의 생명 존엄에 대해서는 어째서 개와 고양이 등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라며 ‘유난 떨지 말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네요. 네, 마찬가지로 고려돼야 마땅한 사안이고, 문명 사회로 발전을 더해가는 세계의 큰 딜레마이지요.

사실 우리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다소 늦게 반려동물과 인간의 생활에 대해 정부 차원의 논의를 하고 있는 것조차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입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식용 동물 도축이 정치권과 각계의 뜨거운 이슈인 만큼, 우리도 언젠가 이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인 논의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요?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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