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선을 넘는 이유

      2024.09.24 18:25   수정 : 2024.09.24 18:55기사원문
최근 한국은행이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주요 대학의 신입생 선발인원을 지역별 인구비례로 할당하는 소위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시행하여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학 진학률 격차를 좁히자는 것이다. 한은 본연의 역할이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한 물가안정과 성장의 도모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런 발표는 다소 의외로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의 관할도 아니고 전문성도 없는 교육정책에 간섭하는 오지랖으로 보일 수도 있고, 현실을 무시하고 정부의 입시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 정책대안을 제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죽하면 한은이 이렇게 나설까 하고 반문할 필요도 있다.

경제운영을 자동차 운행에 비유한다면 통화정책을 비롯한 거시정책은 주어진 자동차를 안정적으로 잘 운전하는 것과 같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적절히 이용하여 과속을 피하고 적정속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운전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동차의 구조적 성능이다.
성능미달이나 고장난 차를 운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냉각계통 문제로 가속할 때마다 엔진이 과열된다면 운전자의 생각대로 차를 몰 수가 없다. 지금 한은이 처한 상황이 이 운전자와 흡사하다. 인플레 압력이 완화되면서 이자율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 조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이자율을 낮추어야 하는데, 부동산 시장 과열에 기름을 부을까 봐 망설이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이 독자적인 논리로 움직이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블랙홀처럼 인구와 경제력을 빨아들이는 수도권 집중의 문제이다. 수도권에 아무리 많은 집을 공급해도 더 많은 수요가 몰리면서 오히려 블랙홀의 덩치만 커지고 부동산 가격은 끝없이 올라가고 있다. 이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통화정책에만 의존하는 것은 고장난 자동차를 고치지 않고 그저 차를 살살 몰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 한국은행의 이번 제안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고, 입시제도를 통한 한 가지 해결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수십년 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정치권과 주무부서들에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통화정책으로 잡을 수 없는 주요한 물가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밥상물가이다. 수박이나 사과 같은 과일값이 올라 서민들이 함부로 사먹을 수 없게 된 지는 이미 오래이고 최근에는 오이, 상추, 배추 등 우리 식단의 기본적인 야채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이들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인플레나 작황으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며,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서도 우리나라의 식료품 가격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볼 때 선진국이 되면 겪는 일반적인 현상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거시적 인플레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좁은 국토로 인한 높은 생산비용과 독과점적인 유통구조 등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계속 거론되고 있지만,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고 단기적인 대응에만 의존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시장 구조개선안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주무부서로부터 퇴짜를 맞고 있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검역기준으로 다른 나라들이 다 수입하는 과일들도 제대로 수입하지 못하고 있다.


의식주 중에서 식과 주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은 저출산 문제를 더욱 심화시켜 국가 존립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된다. 이를 일반적인 인플레 정책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안일한 대증치료에 불과하다.
과감한 구조적 해법이 절실하다.

■약력 △62세 △UCLA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장 △한국산업조직학회 회장 △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조정위원 △전기위원회 시장감시위원장(현)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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