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지정학적 갈등...“첨단 제조업 기술 우위 유지·수입공급망 안정성 강화 必”
2024.09.27 13:30
수정 : 2024.09.27 13:3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최근 글로벌 공급망 내에 지정학적 블록화·지역화가 나타나면서 2010년대 들어 시작된 상품교역 증가세 둔화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데 반해 서비스 교역은 증가세를 유지하는 등 교역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향후 첨단 제조업 측면에서 기술 우위를 지키고 수입 공급망 안정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27일 한국은행은 ‘BoK 이슈노트: 글로벌 공급망으로 본 우리경제 구조변화와 정책대응’을 통해 미래 공급망 변화 요인과 한국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이같이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앞으로 △지정학적 긴장 △AI 주도 디지털 혁신 △서비스 교역 확대 △기후변화 대응 등의 요인이 미래 공급망의 모습을 형성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참여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급망 변화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공급망 관점에서 우리나라 경제는 △생산구조가 제조업에 치중돼 있고 △수출의존도가 높으며 △서비스 수출은 높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세가 더딘 모습인 데다가 △일부 신산업 중심으로 원자재 수입 안정성이 요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산업별로 보면, IT제조업(반도체 등) 공급망에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전방(upstream)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0년대 이후 부가가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공급망 내 중요성이 더욱 높아져 현재 중국, 미국 다음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다만 2018년경부터는 IT제조업 공급망에서 한·중 생산구조가 변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에는 하방요인으로, 중국의 대한국 수출에는 상방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IT제조업의 대중 수출연계생산는 지난 2018년 이후 생산구조적으로 급격히 위축된 반면 같은 시기 중국의 대한국 수출연계생산은 과거보다 빠르게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중국 IT제조업의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정체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글로벌 IT제조업에 투입되는 중국산 중간재의 비중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IT제조업의 대중 연계성 약화도 이같은 중국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수출연계생산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여타 주요국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내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전기차 전환과 함께 향후 자동차 산업의 지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의 핵심 기능이 될 자율주행 시스템과 관련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화웨이가 시장을 선점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련 광물 및 소재의 공급망이 취약하고, 중국과의 경쟁도 치열하므로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함께, 배터리 제조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나아가 미래의 공급망은 중간재 상품에 비해 중간재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공급망 변화와 우리 경제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산업 전략이 필요해진 시점이다. 이아랑 한은 조사국 거시분석팀 팀장은 "첨단제조업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국제적인 전략적 협력을 통한 수입 공급망 안정성 강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서비스 수출 확대 전략은 제조업 내재 서비스와 디지털 서비스라는 투트랙(two-track)으로 전개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급망으로의 전환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공급망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도 제시됐다. 먼저 반도체 산업에서 초격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국제 R&D협력체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으며 배터리·전기차 산업의 경우 수입선 다변화, 핵심광물 비축을 다방면으로 강화하는 한편, ESG 기준에 맞춰 수입국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 팀장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내수와 수출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에서 기술 간 융합을 저해하는 업종별 구분에 근거한 규제를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