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녹슨 칼
2024.09.29 18:08
수정 : 2024.09.29 21:22기사원문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이 같은 주체들이 있다. 공동의 타파 대상은 단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다. 그 방법으로는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개선, 배당성향 확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그보다 앞서 시장 내 재계 중심주의를 넘어야 한다.
지배구조 개혁 얘기만 나오면 국내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어김없이 단골 논리를 가져온다. '기업 경쟁력 훼손' '경영권 침해' '소수주주의 기업 의사결정 개입' 등이다.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에서도 경제단체 관계자는 발언 시작부터 "공격을 너무 받는 거 같다, (토론자들) 균형이 (잡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라고 운을 뗐다.
토론자들은 앞서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들이 대리인으로서 의결권을 적극 행사해야 하고, 일반주주들 목소리가 묵살되는 주주총회 진행 방식을 개편하자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이를 진영 싸움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는 이어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와 지배주주 목적 함수가 표면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날 뿐 의도적으로 지배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제대로 비상(飛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일한 생각이다. 사실 우리 증시는 저평가받고 있지 않다. 어쩌면 아직 공고한 재계 중심주의, 딱 그만큼 인정받고 있다.
일반주주들의 정당한 요구를 기업 경쟁력 훼손의 이유로 내세우고, 법상 규정돼 있지 않은 경영권을 침범당해선 안 되는 절대 가치로 여기며, 지배주주에 치우치지 않는 주주총회 요청을 개입으로 규정하는 이 판에서 2600대 코스피와 700 선 코스닥은 당연한 결과다.
물론 이복현 금감원장을 중심으로 언급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가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재계는 최소한 푸대접받고 있는 일반주주들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법적 안전장치를 제안해야 한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녹슨 칼 하나만 손에 쥔 채 후방에서 허우적대는 것만으론 어떤 진전도 이끌어낼 수 없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