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가스라이팅' 한 동창생, "연예인 시켜줄게"

      2024.10.01 14:45   수정 : 2024.10.01 14:4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연예인을 꿈꾸는 동창생에게 연예계 거물이라는 가상의 인물인 척 행세하며 수천만원을 갈취한 20대 남성을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이 남성은 수년간 수면시간 제한, 가사 노동 부과 등 생활 규칙을 정하면서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지배하는 이른바 ‘가스라이팅’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형사 1부(이승훈 부장검사)는 지난 8월 공갈 및 사기 혐의로 A씨(28)를 구속기소했다.

피해자 B씨에겐 심리치료를 지원키로 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8월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예인을 꿈꿨던 중학교 동창생 B씨에게 ‘유빈’이라는 절대적 권력과 힘을 갖고 있는 연예계 거물이 있다고 소개했다.

“나도 유빈이 시키는 과제를 하면서 드라마 단역에 출연할 수 있었고, 그녀의 존재를 함부로 말하면 큰일 난다”며 B씨에게 이른바 ‘연예계 진출 프로젝트’를 권유했다. 물론 유빈은 A씨가 만들어낸 가상의 여성이었다. B씨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사실을 알고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이다.


A씨는 별개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유빈’인척 행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데뷔 프로젝트 과제 명목으로 일일 수면시간 5시간 30분 이하 제안, 설거지, 청소 등 가사 노동,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 캐릭터 키우기 등을 하도록 강요했다. 또 피해자가 가족을 만나는 것을 차단했으며, 2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명령했다.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도록 조종해 고립시키는 수법이다.

금전 갈취도 이뤄졌다. 과제를 다하지 못하거나 생활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벌금’ 명목의 채무도 부과했다. A씨가 연예계 거물로 행세하며 갈취한 벌금은 7200만원에 달했다. 피해자는 매일 주, 야간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벌금을 내야 했다.

A씨가 전과가 없고 피해 금액도 1억원을 넘지 않은 만큼 당초 사건을 검토한 경찰은 A씨를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죄질이 중하다고 판단해 지난 7월 A씨를 구속한 상태에서 법정으로 넘겼다.

범행은 4년 동안 계속됐다. 따라서 살펴봐야 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만 3100만 개에 달해 포렌식 과정에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신서연(27·변호사시험 12회) 검사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는 매일 새벽 퇴근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연예계 데뷔 프로젝트가 10년 정도 알고 지냈던 동창의 자작극이라는 것을 알게 된 피해자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신 검사는 “피해자 조사를 하루 종일 했었는데, 이 사람이 4년간 고통받았던 시간을 하루 안에 다 듣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친구한테 당한 배신감과 황금 같은 청춘을 뺏겼다는 고통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어느 사기 범행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강제수사에 나섰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자는 극심한 정신적 심리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피해자지원센터 등을 통해 B씨의 심리치료도 지원했다.

1심 법원도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3단독 정현기 판사는 지난달 25일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검찰은 이번 사례와 같은 ‘가스라이팅 기반 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가스라아팅 기반 범죄는 재산상 피해뿐 아니라 심리적 고통까지 야기해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범죄”라며 “엄정히 대처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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