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석유전쟁으로 치닫나…증산여력이 충격 흡수할 듯

      2024.10.05 04:02   수정 : 2024.10.05 04:0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 공격을 검토하면서 중동이 석유전쟁에 맞닥뜨릴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하루 170만배럴을 수출하는 이란 석유 시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동이 중단되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다른 중동 국가들의 석유 시설을 공격해 이들의 석유 수출에 차질을 일으키면 그 충격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경제에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다만 이란이 오랜 경제제재로 무기들이 낡아 전력이 약화된 데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이 이란의 보복 대응 파괴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여 실제 충격은 우려만큼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란 석유 수출이 막히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증산 만으로도 그 부족분을 메울 수 있어 유가 폭등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 이란 석유 시설 칠까


이스라엘은 지난 4월에도 이란 석유 시설 공습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란이 드론과 미사일들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체면치레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양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좀 더 공격적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미국도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시설 공격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미 전 대통령 에너지 보좌관을 지낸 밥 맥낼리 래피디언 에너지 그룹 창업자는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을 전망하고 있다.

맥낼리는 이스라엘이 “눈에는 눈”보다 더 강한 “눈 하나에 눈 3개” 모드라면서 “이번에는 4월에 비해 훨씬 더 큰 반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애널리스트 출신인 RBC캐피털 마켓츠 상품전략 책임자 헬리마 크로프트는 미국이 이란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제한할 것을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로프트는 이스라엘은 석유 시설을 “저항의 축의 ATM(현금인출기)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르그섬


이란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석유 시설은 수도 테헤란에서 약 25km 떨어진 남부 연안의 카르그섬 석유 수출 시설이다.

카르그섬의 석유 수출항은 이란 석유 수출의 약 90%를 담당하는 핵심 시설이다.

크로프트는 이란의 카르그섬에 위험이 집중돼 있다면서 이란 석유 부문의 필수적인 신경계가 바로 이곳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카르그섬 석유 수출 시설을 곧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이란 유조선단이 이례적으로 섬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조선 입출항 흐름을 추적하는 탱커트래커스닷컴의 사미르 마다니 최고경영자(CEO)는 전례 없이 카르그섬 인근에서 이란 유조선단이 석유를 싣지도 않고 대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이라크가 카르그섬 석유 시설 파괴를 위협했고, 항구를 떠나는 유조선들을 목표로 공격하기도 했다.

카르그섬보다 중요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바단 정유시설도 이스라엘이 대안으로 고려할 만한 대상이다.

컨설팅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아바단 정유설비는 이란 석유 정제 능력의 약 17%, 이란 휘발유 공급의 13%가 집중된 곳이다.

씨티그룹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아바단 석유 인프라를 공격해도 하루 최대 45만배럴 석유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카르그섬을 공격하면 하루 최대 150만배럴, 전 세계 하루 석유 수요의 1.4%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란의 대응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설비를 공습하면 이란이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크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이란이 이스라엘이 아닌 사우디 석유 설비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에 직접 타격을 주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효과가 크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RBC의 크로프트는 이란과 사우디가 지난해 외교 관계를 회복했고,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침공 이후에는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면서 이란이 사우디 공격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신 이란은 예멘 후티 반군 등 중동 지역 대리인들을 내세워 홍해에서 유조선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후티 반군은 가자전쟁 이후 홍해에서 유조선들을 공격해 선박들이 홍해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먼 우회로를 택하도록 한 바 있다.

또 다른 치명적인 대응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해 유조선들의 출입을 막은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20%를 책임지는 핵심 해상 교통로다.

다만 미국이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는 등 서방의 대응능력이 크게 높아져 이란의 파괴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달러 갈까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을 공습하고, 이란이 보복에 나서면 유가는 뛸 가능성이 높다.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이미 큰 폭으로 올랐다.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헤닝 글로이스틴은 이란과 이스라엘 갈등이 석유 시설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브렌트가 배럴당 85달러를 웃도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이스틴은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을 공습하면 얘기가 달라진다면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지만 호르무즈 해협 항행이 차질을 빚을 정도의 이란 역습이 없다면 브렌트가 이보다 더 높이 뛰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은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2008년에 기록한 브렌트 사상 최고치 배럴당 147.50달러 돌파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성 없다


그렇지만 최악을 대비하기는 해야겠지만 실제로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지 않는 한 이란 석유 생산, 수출 차질은 다른 중동 산유국들이 증산으로 곧바로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2년 동안 감산을 진행해 생산 여력이 있고, 특히 사우디와 UAE는 즉각 증산이 가능하다.

생산여력은 하루 500만배럴이 넘어 이란 하루 산유량을 압도한다.

컨설팅업체 우드매킨지의 석유시장 담당 부사장 앤루이스 히틀은 생산여력은 ‘확실한 쿠션’이라고 평가했다.

증산이 즉각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석유 소비국들은 이런 경우를 대비한 비축유를 풀어 유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


다만 미 석유 비축 규모가 1980년대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고,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미 셰일 석유 역시 대규모 비용이 드는 생산 확대를 꺼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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