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먼저 마르는 쪽이 진다"…'치킨 게임' 확전한 고려아연

      2024.10.06 06:31   수정 : 2024.10.06 06:31기사원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0.2/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9.19/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고려아연(010130) 경영권을 둘러싼 '쩐의 전쟁'이 경매장을 방불케 하는 치킨 게임으로 확전했다.

MBK파트너스-영풍(000670) 연합이 공개매수가로 주당 75만 원을 제시하자 고려아연이 주당 83만 원을 불렀고, 다시 MBK-영풍이 83만 원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연장전에 돌입했다. 양측 모두 최소 매입 수량마저 없애고 빚을 끌어와 혈투를 벌이면서, '실탄'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패배하는 피의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호가 부르듯 가격 높이고 최소 수량 삭제…'빚더미 혈투'

6일 업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그의 작은아버지인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창규 영풍정밀(036560) 회장이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7일 오전 이사회를 소집한다. 제리코는 주당 3만 원에 대항공개매수 중인데, MBK-영풍이 지난 4일 공개매수가를 동일 가격인 3만 원으로 높이자, 최 회장 측도 대항공개매수 가격과 인수 수량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쥐고 있어 경영권 분쟁의 '핵심 고리'로 통한다.
영풍정밀을 갖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고려아연 의결권 3.7% 우위에 서기 때문에 양쪽 모두 놓칠 수 없는 지분이다. 특히 영풍정밀은 고려아연보다 개인주주 비중이 높고, 매수 예정 물량(25%)도 MBK-영풍 측(43.43%)이 더 많다는 점에서 최 회장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매수 가격과 물량을 크게 높일 공산이 크다.

본게임인 고려아연 공개매수는 열기가 더 뜨겁다. MBK-영풍은 당초 공개매수 종료일이었던 지난 4일 장 마감을 불과 1시간 앞두고 공개매수 가격을 75만 원에서 83만 원으로 높이고, 최소 매입 수량(6.98%) 문구도 삭제했다. 고려아연이 같은 날 주당 83만 원에 최소 수량이 없는 자사주 공개매수를 시작하자 동일 조건으로 맞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공개매수는 최소 오는 14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더 높여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려아연은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함께 공개매수를 시작하면서 총 3조1000억 원을 투입했는데, 고려아연은 2조7000억 원(자기자금 1조5000억·차입금 1조2000억 원)을 조달했다. 당초 고려아연은 2조7000억 원의 단기차입을 뚫어놓은 상태라 아직 1조5000억 원을 더 투입할 여력이 있다.

공개매수가 서로 호가(呼價)를 부르며 가격을 높이는 모양새가 된 셈인데, 결국 실탄 부족으로 먼저 백기를 드는 쪽이 패배하는 구도가 됐다. 이기는 쪽도 빚잔치를 벌인 만큼 상처뿐인 승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공개매수가 끝나면 주가도 원상 복구(50만 원대)될 가능성이 높다"며 "양쪽 모두 고금리에 막대한 차입금을 끌어 썼기 때문에 상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배임" vs "왜곡" 장외전 가열…"누가 이겨도 회사 미래는 타격"

고려아연과 MBK-영풍 연합은 남은 기간 팽팽한 '장외전'을 이어갈 전망이다.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배임이라며 법원에 절차 중단 가처분을 신청하는 한편, 고려아연의 배당가능이익(자사주 취득 한도)이 586억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시장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중단 또는 무산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고려아연은 MBK-영풍의 기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재판부의 판결문 일부를 발췌 공개하며 "자사주 공개매수가 배임이라는 주장은 거짓 왜곡"이라며 맞서고 있다. 박기덕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일 입장문을 통해 "배당가능이익이 6조 원 이상이라는 진실에 대표이사 직을 걸겠다"며 강경 대응하기도 했다. 공개매수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여론전도 활활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누가 승리하더라도 고려아연의 사업 동력이 훼손되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전망도 뼈아프다. 출혈 경쟁을 불사한 지분 다툼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게 되고, 이를 보전하는데 회삿돈이 쓰이면 신사업인 '트로이카 드라이브'(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소재·자원순환) 등 미래 사업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MBK-영풍 연합이 승리했을 경우 고려아연의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는 시선도 많다.
MBK는 국가기간산업 경영 경험이 없는 데다, 이미 고려아연 핵심기술진이 줄사표를 예고한 상황이다. MBK가 인수 비용 보전 등을 이유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MBK는 2013년 ING 생명을 인수할 때도 '10년 이상 보유·고용승계'를 단언했지만, 인수 5개월 만에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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