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이 답이다

      2024.10.08 18:03   수정 : 2024.10.08 20:27기사원문
2020년 초 코로나 발발 초기에 겪었던 마스크대란에 관한 당시 언론 보도를 읽어보면 기억이 새롭다. 초유의 마스크 부족 사태에 맞서 정부는 하루 마스크 생산량 중 일정 비율을 약국 등 공적 판매처에서만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공적 마스크제, 출생연도별로 지정 요일에만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마스크5부제, 1인당 구매수량 제한, 수출금지 등 비상조치들을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들과 국민의 협조가 위기 극복에 기여했지만 6개월 사이에 마스크 품귀가 공급과잉으로 바뀐 것은 민간부문의 공급 증가 덕택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주당 마스크 생산량이 2020년 2월 넷째 주 699만개에서 8월 넷째 주에는 2737만개로 거의 4배로 늘었고, 마스크 가격은 4156원에서 1306원으로 급락했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마스크 제조업체 수는 9.8배, 생산설비는 75배로 급증했다. 이 사례는 시장원리가 작동한다는 사실과 정부의 수요관리만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주택은 마스크와 달리 단기간에 공급을 대폭 늘릴 수 없고, 수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힘이 시장가격을 좌우한다는 사실은 같다.
정부가 주택 가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분양가상한제를 생각해보자. 이 규제는 집값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매년 분양되는 아파트 수는 전체 아파트 재고에 비하면 미미하다. 또한 시가보다 낮게 분양된 아파트가 나중에 시장에 나오면 주변 시세에 거래될 것이다. 결국 분양가상한제는 상당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소수의 운 좋은 수분양자에게 큰 이득을 안겨줄 뿐 전체 아파트 가격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신규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고, 로또청약 당첨자들이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계층이라는 보장도 없다.

집값 안정은 중요하다. 집값이 안정되면 자가 구입이 쉬워지고, 임차가구의 임대료 부담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제나 규제를 통해 수요를 억제하면 집값이 안정되더라도 주택의 생산과 거래, 소비가 위축되어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 향상은 어려워진다. 반면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안정되고 주택 재고가 양적·질적으로 확충된다. 주택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국민의 주거수준 향상에 둔다면 지속적인 공급 확대가 답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직도 공급이 부족하냐는 질문도 나온다. 2022년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1%로 가구 수보다 주택 수가 더 많지만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3.7%, 수도권은 96.6%, 대전광역시는 97.2%에 불과하다. 주택수급의 국제비교에 널리 사용되는 지표인 인구 1000인당 주택 수의 경우 우리나라 2022년 수치는 430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게다가 준공된 지 30년 이상 경과된 주택이 동 수 기준으로 52.0%, 연면적 기준으로 25.7%이며 서울은 이 수치가 각각 57.5%, 37.8%에 달한다. 1인당 소득이 현재의 4분의 1 정도일 때 지어진 이들 노후주택의 품질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노후주택은 에너지 효율이 낮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탄소중립 달성에도 제약이 된다.

정부는 수요에 부응하는 주택의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 활성화와 수도권 택지공급을 추진하고 있으나 고금리 지속, 공사비 상승, PF대출 부실화, 일부 법률 개정의 지연 등으로 충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급애로를 타개하기 위한 제도개선과 함께 이미 발표된 공급계획이 차질없이 이행되고 있음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수요자의 기대심리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김경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
■약력 △67세 △서강대 경제학과 학사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국토교통부 제1차관 △국토연구원 원장 △한국주택학회 회장 △한국부동산금융투자포럼 회장(현)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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