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한강 최신작은 9월 발표한 시 2편

      2024.10.12 07:00   수정 : 2024.10.12 07:00기사원문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한강 최신작은 9월 발표한 시 2편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시 '북향 방' 등 2편 투고
대학생 한강에게 시 창작 가르쳤던 정현종 시인 "시 계속 썼으면"

한강 작가의 2011년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소설가 한강(54)은 소설에 주로 집중하고 있지만 시도 조금씩 써서 발표해왔다.

한강의 가장 '따끈따끈한' 최신작은 지난달 발간된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수록된 시 두 편이다.

시 '북향 방'에는 북쪽으로 향한 방에서 살게 된 시인이 어둠과 밝음에 대한 공간적 사유와 느낌을 차분하고 서늘한 어조에 담았다.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중략)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 기억나지 않고 / 돌아갈 마음도 없다 /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 빛이 변하지 않는"
또 다른 시 '(고통에 대한 명상)'에선 새장에 갇힌 새 한 마리를 보며 느낀 고통에 관한 상념을 풀어냈다.

"새를 잠들게 하려고 / 새장에 헝겊을 씌운다고 했다 / 검거나 회색의 헝겊을 (밤 대신 얇은 헝겊을) / (중략) 철망 바닥에 눕는 새는 죽은 새뿐 / 기다린다고 했다 / 횃대에 발을 오그리고 / 어둠 속에서 꼿꼿이 / 발가락을 오그려붙이고 암전"
흔히 소설가로만 알려진 한강의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최신 작품들이다.

한강은 사실 소설을 쓰기 전에 먼저 시를 썼다.

한강의 유일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199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후 잡지사 '샘터' 편집부에서 기자로 일하며 습작하다가 그해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등을 실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한 후에는 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한강은 소설을 쓰면서도 비록 소량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시를 발표하곤 했다.

2013년에는 20년간 써온 시를 모아 첫 시집이자 자신의 유일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은 이렇다.

"어느 / 늦은 저녁 나는 /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 그때 알았다 /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 지금도 영원히 /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 밥을 먹어야지 /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이 가장 최근 시를 투고한 같은 지면에는 공교롭게도 대학 시절 은사인 원로시인 정현종(85)의 작품도 함께 실려 눈길을 끈다.

정 시인은 시 '어린애들과 눈이 맞아', '하루의 크기는 히말라야만큼 거대합니다' 두 편을 투고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됨됨이가 아주 선량하고 조용한 성품이었어요.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아도 써온 시에서 신들린 것 같은 면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한강에게 시 창작론을 가르쳤던 그는 한강의 대학 시절 모습을 지난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정현종 시인(2008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한강에게서 문학적 재능을 감지했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요. 시를 잘 썼어요"라고 답했다.

한강이 대학 2학년 때쯤(1990년 추정) 자신의 시 창작 강의에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정 시인은 당시 과제로 내준 시를 수강생들이 써오면 함께 합평과 토론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전에 내가 어딘가에서 한강의 당시 글에 대해 '무당기가 있다'는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신들린 것 같은 면을 (한강의 시에서) 느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는 "전혀 예상도 못 했다. 참으로 그저 놀라울 뿐"이라면서 한국 문학의 "경사"라고 기뻐했다.

정현종은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2005년까지 연세대 국문과 강단에 선 뒤 퇴임했다.

'사물의 꿈',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갈증이며 샘물인', '고통의 축제' 등의 시집과 시선집을 펴낸 그는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혁신하고 새로운 현대시의 가능성을 개척한 대시인으로 꼽힌다.


정현종은 세계인이 경탄하는 대작가로 성장한 오래전 제자 한강에게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쓰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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