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하고 감동적..오페라 매력에 눈떴죠”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2024.10.13 19:34   수정 : 2024.10.14 16:1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이탈리아 오페라 성악 관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운데, 현지 101년 역사의 세계적인 야외 오페라 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의 2024년 개막작 ‘투란도트’가 12일 성황리에 개막했다.

제피렐리 버전 오페라 ‘투란도트’ 한 편의 블록버스터급 시대극 보는 재미

"수수께끼는 셋, 목숨은 하나", "수수께끼는 셋, 생명은 하나"
세계적인 영화감독 겸 오페라 연출가 고(故) 프랑코 제피렐리의 2010년 프로덕션을 그대로 재현한 이날 공연은 마치 한편의 블록버스터급 시대극을 보는 듯했다. 너비와 높이가 각각 50·20m에 달하는 압도적인 무대 규모부터 뛰어난 색감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무대 의상과 미술로 눈이 즐거운 프로덕션 그리고 성악가·합창단·연기자·무용수 등 500여명 출연진이 함께 만든 춤과 곡예, 연기, 노래의 향연까지 기존 실내 오페라 공연에선 느껴보지 못한 웅장함과 극적 재미를 줬다.

다소 우려가 따랐던 공연장 음향은 공중에 마이크를 설치해 뒷좌석까지 닿게 했다.


푸치니 예술세계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투란도트’는 냉혹한 공주 투란도트가 통치하는 중국 전설시대 북경을 무대로 한다. 침략자 손에 희생된 선대 공주로 인해 남성을 증오하는 ‘투란도트’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투란도트가 낸 수수께끼를 풀어 사랑을 쟁취하려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칼라프를 사랑하는 시녀 류의 희생적 사랑과 칼라프의 용기가 마침내 얼음공주의 마음을 녹인다는 내용이다.

이날 ‘투란도트’를 연기한 우크라이나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의 날카로운 고음은 호불호를 낳았으나, 투란도트가 지닌 신비로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낭만적 영웅 ‘칼라프’ 역의 독일계 브라질 테너 마틴 뮐레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고음과 뛰어난 표현력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투란도트’의 가장 유명한 3막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네순 도르마)를 가창했을 때는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희생의 아이콘 류를 연기한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는 천상의 목소리를 뽐냈다. 캐릭터의 감정에 따라 섬세하게 달라지는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로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며 청중과의 '밀당'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칼라프 아버지 역 ‘티무르 왕’을 연기한 이탈리아 유명 베이스 페루초 푸를라네토의 원숙한 가창도 주목됐다. 여기에 “사랑에 눈먼 놈이 왜 이렇게 많냐” "결혼식, 장례식을 준비하겠다”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중국 관리 ‘핑’ ‘팡’ ‘퐁’ 그리고 공연의 시작을 여는 ‘만다리노’까지 나무랄데 없는 캐스팅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드라마적으론 1막과 2막의 대비가 흥미롭다. 핍박하는 민중들 사이 중국문화를 엿볼수 있는 기예와 탈춤, 숯돌을 돌리는 사형집행관, 등불을 든 동자승들의 행렬과 같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2막은 등장인물 수를 줄이고 인물에 더 집중하게 한다. 동시에 어둡고 차분한 톤의 1막과 달리 2막에서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면서 원색의 화려한 색감을 펼쳐보이며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음악을 책임진 다니엘 오렌의 지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0여 명의 연주자와 위너오페라합창단, 송파구립소년소녀합창단, 송파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반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합창단을 능숙하게 이끌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1975년 베를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한 그는 현재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관객들 “오페라의 매력에 눈떴어요.”

이날 송파구립소년소년합창단의 일원인 딸의 무대를 보러 왔다는 한 여성 관객은 “정말 웅장했다”며 “특히 성악가들뿐 아니라 대규모 출연진과 함께 만드는 무대가 정말 장엄하고 멋졌다”고 말했다. “투란도트가 사랑을 끝까지 거부할 줄 알았는데, 마침내 사랑을 받아들이는 결말도 감동적이었다. 특히 류가 노래를 너무 잘하고, 너무 멋졌다”고 감탄했다. 평소 자녀와 함께 뮤지컬과 연극을 즐겨봤다는 그는 "솔직히 오페라는 본 적도 관심도 없었다. 근데 오늘 공연을 보고 오페라의 매력에 눈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볼까 생각이 들었다”며 만족해했다.

중국 자금성에서 한 ‘투란도트’를 DVD로 본 적 있다고 밝힌 한 50대 여성 관객은 “평소 오페라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나, ‘투란도트’는 실제로 한번 보고 싶어 오게 됐다”며 “무대와 의상이 화려하고 가수들의 성량도 정말 안정적이었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직접 들으니 짜릿했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한 30대 여성 관객은 “아레다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이라고 해 관심이 갔었다”며 “야외 원형극장인 ‘아레나 디 베로나’는 음향 효과가 뛰어나지만 이곳은 그 정도가 아닐 텐데, 가수들의 목소리가 맨 뒷자리까지도 잘 들려서 신기했다. 무대는 정말 너무 너무 예뻤다”며 감탄했다.


한편 오페라 '2024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은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솔오페라단이 주최한 공연이다.

솔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은 앞서 "오페라 연출의 대가 프랑코 제피렐리의 무대를 볼 굉장한 기회”라며 “뛰어난 연출력 덕에 그의 작품만 골라 보는 팬덤이 있을 정도다. 제피렐리 재단과 별도 계약을 맺고 소품 하나까지 전부 다 그대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정교한 조명, 화려한 의상까지 이 모든 것을 다 실어 나르는 데 40피트 컨테이너 55개 필요했다”라며 "국내 최대 규모 실내 공연장인 KSPO돔이 공연 장소로 낙점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12-13일 뮤직페스티벌 개최로 관람 방해 등 불만

한편 이날 공연 진행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워낙 대규모 공연이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공연장 소리가 새어들어온 것이다. 12~13일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뮤직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좌석에 따라 이곳 소리가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관람에 방해가 된 것이다. 무대 크기에 비해 자막 스크린이 작은 것도 아쉬웠다. 일부 관객들이 무대 전환 등을 틈타 더 좋은 좌석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좌석에 따라 티켓값이 다른데, 이를 저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한 네티즌은 13일 온라인에 “무대 규모나 오케스트라의 연주력, ‘투란도트’ 맡은 소프라노의 다소 아쉬움에도 류를 담당한 가수의 가창력, 쉴틈 없이 돌아가는 서사 구조와 화려한 볼거리, 한편의 꿈을 꾼 듯한 공연이었다”며 “다만 체조경기장 주변 행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피커 소리에 위대한 작품과 출연진의 연기가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공연의 가치는 별 다섯 개지만 심각한 외부 소음 통제를 고려하지 못한 점에 별 다섯 개 중 두 개를 뺀다”고 적었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 덕분인지 12일 커튼콜 반응은 뜨거웠다. 오는 19일까지 서울 송파구 KSPO돔.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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