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드레서' 송승환 "노역은 큰 행운..삶 돌아보는 계기 됐으면"

      2024.10.21 09:39   수정 : 2024.10.25 09:23기사원문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거야. 나에 대해 잘 얘기해 줘. 널 믿어."(연극 '더 드레서' 선생님 대사 중)

타인과의 관계와 시선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인물들을 그린 연극 '더 드레서(The Dresser)'가 2020년 초연과 2021년 재연에 이어 세번째로 관객들 앞에 섰다. 극중 '선생님(Sir)'으로 출연하는 송승환을 비롯해 '노먼' 역의 오만석·김다현, 사모님 역의 양소민 등 초연 멤버 그대로 의기투합해 더 깊어진 연기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첫 공연을 앞두고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 송승환은 "초연 이후 4년이 지났고 모든 배우가 네 살씩 나이를 더 먹었지만 각 캐릭터에 더 밀착됐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굉장히 편하고 익숙해졌다.

무대 위에 올라가면 저절로 선생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의 2024 기획공연인 '더 드레서'는 국립정동극장이 '은세계'(2008) 이후 12년 만에 선보이는 연극 작품이다.
영화 '피아니스트', '잠수종과 나비',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로날드 하우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하우드가 영국의 배우 겸 극단주였던 도날드 울핏의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에서 5년간 의상 담당자로 일하며 겪은 일들을 모티프로 한다.

드레서의 사전적 의미는 '공연 중 연기자의 의상 전환을 돕고 의상을 챙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작품 속 드레서 '노먼'은 단순히 의상 전담에 그치지 않고 늘 그림자처럼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지며 헌신을 자처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노만 역의 오만석은 "이전 공연에서 큰 그림을 잡아가는데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작은 부분들이 잘 보일 수 있게 완성도를 높여간다는 느낌으로 연기하고 있다"며 "대사나 행동에서 원래 작품이 갖고 있던 의도를 부각시킬 수 있는 부분을 많이 고민하면서 더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김다현은 "코로나19 시기에는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던 작품"이라며 "힘든 시기에도 어떻게든 공연을 하기 위해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던 부분들이 작품에 많이 표현됐다"고 소개했다.

'사모님' 역을 맡아 '선생님'과 애증의 구도인 배우 양소민은 "2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복잡한 한 여자의 심리를 조금은 더 알고 표현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이러한 변화들이 관객들에게도 잘 보여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관객과의 약속을 위해 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227번째 리어왕을 수행하는 의무감 넘치는 배우지만 무대 뒤에선 안하무인으로 생떼를 부리는 노인이다. 극중극 무대로 선보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통해 후회로 점철된 인물 '리어'와 흐릿해지는 기억 앞에서 후회를 회복할 시간이 부족한 '선생님'이 비슷한 감정선을 그린다.

지난 1965년 KBS 아역 배우로 데뷔해 59년간 연기자 겸 제작사로 활동해온 송승환은 "드라마, 영화 등 100여편 이상의 작품을 했는데 배우 역할은 처음"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2011년 연극 '갈매기' 무대 이후 2년간 대표로 있는 PMC 프러덕션에서 작품 제작을 하느라, 또 2015년부터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아 연기 활동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이후 다시 연기자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만난 작품이 '더 드레서'였다.


그는 "배우이자 극단주로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이 이해가 가고 동질감도 느낀다"며 "이 작품에 애착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이가 들면서 노역을 할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다른 일을 거의 안 하고 여유롭게 이 작품만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두 명의 '노먼'에 대해서는 "선천적인 캐릭터가 있으니까 조금씩 다르다"면서 "김다현은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이 보이고, 오만석은 아버지를 잘 돌봐주는 막내아들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 '리어왕'에 빗댄 이야기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그린다.

송승환은 "인간에게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더 드레서'는 인간의 어느 한 단면만 그리지 않고 여러 가지 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기억에 남는 대사로는 '연극배우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지'를 꼽았다.


그는 연극이 갖고 있는 현장성, 시간성, 공간성을 언급하며 "좋은 연극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 쫓겨 중요하지만 잊고 있는 것들을 툭 던져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며 "캐릭터가 입체적이듯 관객들 역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요소가 다양하다. 그게 이번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말을 맺었다.
이번 공연은 11월 3일까지 이어진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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