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꼼수를 부리던 비행소년들 그리고 비행소년들이 보내온 편지
2024.10.19 09:00
수정 : 2024.10.19 12:4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16년 수원지방법원의 소년부 판사로, 그리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수원가정법원의 소년부 판사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소년재판 사건을 접했다. 그 당시 극악무도한 범행부터 아주 경미한 비행까지 다양한 사건들을 처리하였는데 오늘은 소년부 판사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경험들에 대하여 공유해보고자 한다.
경한 처분을 받기 위한 임신?
소년부 판사로 근무할 당시 매년 말 소년보호협의회에 참석하였다.
얘기인즉슨 “비행소년들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년재판을 받으면서 얻게 된 여러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소년재판이 끝나면 바로 그 처분 결과를 다른 비행소년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어떤 판사가 처분이 센지 어떤 판사가 온정적인지 각 가정법원 소년부 판사의 성향을 비교하여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비행소년들은 그들의 표현으로 소년원 처분을 많이 하는 판사를 ‘10호 천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떤 소년부 판사가 비행의 중함이나 가정의 보호력으로 보았을 때는 응당 10호 처분을 받아야 할 임신한 비행소년에게 사회 내 처분(보호관찰 등)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 소문이 SNS를 통해 전국의 비행소년들에게 퍼지게 되자, 중한 비행을 저지르고 소년원 처분을 받을까 봐 도망다니고 있는 여자 비행소년들 중 일부가 가벼운 처분을 받기 위해 자기 주변에 있는 아무 남자와 성관계를 맺고 임신한 뒤에 소년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 없는 10대라 하더라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임신을 이 정도까지 가벼이 생각할 줄은 몰랐다. 사실 소년원이나 6호 시설은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임산부가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행소년이 단지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행의 수준과 보호력이 같은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처분을 내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오히려 아이를 키울 의사와 능력이 전혀 없는 미성년인 소년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아이의 주변 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행소년들은 소년심판을 받을 당시에는 법정에 출석하여 울면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말하면서도 사회 내 처분이 내려지면 낙태시술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나는 위와 같은 충격적인 얘기를 듣자마자 소년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다른 판사님들에게 위와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비행소년이 임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에 대한 처분을 약하게 하거나 조정하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였다. 임신한 비행소년이 소년원에 입소하게 되면 소년원에서 관리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고 임신한 소년에 대해 소년원 처분을 했을 때 소년원으로부터 여러 애로사항을 전달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향을 알게 된 나를 비롯한 동료 소년부 판사들은 비행소년이 임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소년원 처분을 사회 내 처분으로 변경해 주지는 않았고, 그 결과 몇 년 뒤에는 임신 꼼수(?)를 부리는 비행소년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비행소년들이 보내는 편지
형사재판의 경우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형을 선고하고 그 형이 확정되면 검사가 형을 집행하게 되지만 소년재판의 경우 1, 6, 7호 처분에 대해서는 판사가 처분의 집행감독 권한을 갖게 된다. 집행감독이 시작되면 새로운 사건번호가 부여되고 집행감독이 종료될 때까지 소년부 판사는 비행소년들이 자신이 내린 처분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집행감독은 아동복지시설의 방문이나 퇴소 전 법관 면담 등 능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한 비행소년들이 보내온 편지를 통해 그 소년들의 심리 변화와 생활을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일기처럼 써서 보내는 소년들도 있었고, 나에 대한 원망을 담은 편지도 있었다. 가끔은 자신의 가정사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자신이 왜 그런 비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하소연하는 변론요지서 같은 내용의 편지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편지는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편지이다. 보통 비행소년들은 항상 바깥으로 돌면서 친구들을 만나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기에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인생이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 소년재판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자유가 제한되고 시설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문득 자신이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깨닫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성찰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쓰는 친구들은 대체로 시설 퇴소 후에도 비행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바라는 비행소년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집행감독 하고 있는 아이들과 편지로 교류하다 보면 왠지 그 비행소년들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나 자세를 잃을 것 같기도 하고, 편지를 보내지 않는 친구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따로 답장은 하지 않았다. 다만 공식적으로 6호 아동복지시설에 방문할 경우 ‘네가 보내준 편지를 잘 받아 읽고 있다’고 격려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형사재판을 하면서 그리고 소년재판을 하면서 수많은 반성문을 읽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은 글씨체가 정돈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어휘력이 좋든 나쁘든, 글이 길든 짧든 간에 진심이 담긴 글은 어떻게든 그 진심이 전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