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에 휘둘리는 헌법재판관 임명
2024.10.16 18:11
수정 : 2024.10.16 18:11기사원문
오늘(17일)이면 이종석 헌재 소장과 김기영·이영진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된다.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한 헌재법 23조 1항에 따르면 헌재의 기능은 내일부터 정지된다. 한동안 '헌재 마비'를 걱정해왔지만 헌재가 긴급자구책을 강구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릴 수는 있게 되었다. 헌재는 지난 14일 해당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남은 6명만으로도 심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스스로 내린 응급처방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임시처분일 뿐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3인의 후임을 선출해야 하는 국회가 할 일을 하지 않은 게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여야 각각 1명, 여야 합의로 1명을 추천하자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 차이를 들어 야당이 2명을 추천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진다. 국민의힘은 2000년 김효종, 2006년 목영준, 2012년 강일원 재판관을 여야 합의로 선출한 선례를 들고 있다. 1994년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2배 가까이 많은 의석을 이유로 김문희·신창언 재판관을, 야당인 민주당이 조승형 재판관을 추천한 선례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진정한 속내는 헌재 기능 마비에 있다는 관측이 있어 왔다. 재판관 6명 체제가 될 경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손준성 검사장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 등의 진행이 불가능해진다. 현재 야당에 유리한 방송문화진흥회 구성을 바꿀 수 없고, 검사직무 정지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판결 후 표적이 된 검사와 판사 탄핵을 통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 만에 하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될 경우 국정공백을 통해 수사와 재판 진행을 방해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퇴임하는 이종석 소장을 재판관으로 재추천하려 한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야당의 반발과 헌재 마비의 빌미를 제공하는 퇴행일 뿐이다. 재판관 임기 도중 소장 지명을 받은 박한철·이진성·유남석 전 헌재소장은 모두 잔여임기만 소장직을 수행하고 퇴임했다. 여당이 선례를 주장하려면 자신들부터 선례를 존중해야 한다. 윤 대통령 동기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를 돌파할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는 실익도 없다. 앞서 본 대로 재판관들의 추천 경로, 성향 등은 결정적인 게 아니다. 진보 우위라는 헌재 구도에서도 이정섭 검사 탄핵심판 청구는 만장일치로 기각되지 않았는가. 국회가 헌재 재판관 3인을 추천하도록 한 헌법 정신은 헌재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조치라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여야 모두 당리당략적 고려를 떠나 국회가 가진 민주적 정당성의 엄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논쟁을 계속하고 싶다면 여야 각각 1명씩이라도 먼저 추천함으로써 헌법과 법률 위반 상태라도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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