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난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 지정학적 융합 가속화되나? 

      2024.10.22 06:00   수정 : 2024.10.24 17:4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현재 국제질서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성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국제질서 규정도 쉽지 않다. 냉전기처럼 블록(Bloc)이라는 세력권을 주도하는 초강대국(Superpower)이 현재는 부재하고, 탈냉전기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사실상 패권지위를 자랑하던 당시의 미국은 2024년 현재의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점에서 현 국제질서는 단극체제도 양극체제도 아니며 그렇다고 러시아와 북한이 목표로 설정한 다극체제와도 거리가 멀다. 이런 점에서 현재는 과도기적 국제체제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고 이것은 신냉전 질서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신냉전의 또 다른 특징은 특정 지역의 지정학이 그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의 지정학에 연결되고 심지어 융합되는 기제가 있다는 점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는 인도-태평양 지정학 관리에 치중하던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킬 뿐 아니라 한국 등 인도-태평양지역 국가의 안보 및 경제 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지정학적 융합의 가장 큰 추동력을 제공한 계기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우 전쟁은 단지 두 국가만의 전쟁이 아니다. 러-우전쟁은 주권이라는 확고한 국제원칙을 무너뜨린 러시아의 현상변경시도에 대처하는 차원의 국제문제 성격이 있다. 따라서 유라시아 지정학에 인도-태평양 국가 등 다른 지정학적 공간의 행위자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 비살상 무기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정학적 융합이 북한과 러시아라는 두 왕따의 불법적 밀착으로 실체화되면서 단지 담론을 넘어 정책화를 통해 대처해야 하는 상황으로 붉어지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설정하며 양국관계를 신동맹으로 격상했는데 최근에는 부상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이 10월 18일 국가정보원의 확인으로 실체화되었다. 1500명의 북한군이 이미 러시아에서 도착해 전장 투입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 규모가 1만2000명에 달한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 세계의 지정학적 공간을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멀리 유라시아 지정학적 전선에 참전한다는 사실은 유라시아와 인도-태평양의 지정학적 공간을 융합시키고, 유럽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선을 융합시키는 강력한 기제를 추동시킨다. 따라서 변화하는 지정학적 융합 기제를 냉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단순히 외교적 주도권 뿐 아니라 전략적·지정학적 주도권마저 잠식될 수 있다. 어느 일방이 지정학적 전선을 융합시켜 세력화하는데 다른 일방이 지정학적 공간을 분리한 채로 방치한다면 융합된 지정학의 공간은 전자의 차지가 되고 만다. 지정학적 융합 기제를 정책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조치가 가능할까? 첫째, 북한군 파병의 불법성을 국제사회 차원에서 명확히하는 성격 규정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기에 그 자체로 불법이다. 따라서 이런 불법행위를 북한이 도와준다는 것은 당연히 불법행위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강도 제재를 받는 북한과 러시아가 불법밀칙을 통해 규칙기반 질서를 와해하려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현상변경 행위다. 문제는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이러한 성격 규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장 유사입장국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규탄성명 등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군 파병 현황, 전장 투입 상황 등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하는 다국적 정보팀을 구성하여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러-우전쟁이 북한과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상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과 러시아가 적용하려고 하는 회색지대전략이 가동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파병된 북한군이 가짜 신분증을 받아 지역 주민처럼 위장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국정원의 언급을 보면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시 적용한 회색지대전을 북한군 파병 활동에 일부 적용하려는 시도한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다국적 정보팀을 매개로 서로 간 정보를 공유·축적하고 이를 외부에 알려 회색지대전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유사입장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나 강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군이 파병된 상태에서 유럽 전체를 대신해 대리전 성격으로 홀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그대로 유지시킬지 여부가 도마에 오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당장 유럽의 파병 혹은 추가 무기지원 등의 후속조치가 없으면 북한군 파병을 문제 인식없이 수용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에 정책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러북 신조약 체결 후 한국은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넘지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군 파병이 그 레드라인을 넘은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유라시아 전장에 북한군이 투입된 상황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북한의 행태가 불법이 아닌 것처럼 묵인해주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이 레드라인을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의 도래는 공이 한국에 넘어왔다는 의미이므로 대러시아 레버리지 제고의 기회로 삼는 지략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가 대리전 전장이 되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는 지략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군 파병은 향후 러시아의 한반도 파병 가능성도 높이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이 당장 이 문제에 정교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유사시 한반도가 북한과 러시아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리전 지대로 전락하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과 유사입장국 공조 플랫폼을 전격 가동해 대처에 나서야 할 결정적 모멘텀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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