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거대 자금력에 밀린 韓 제작사… 하청기지 전락 위기

      2024.10.20 18:20   수정 : 2024.10.21 08:00기사원문

한국 드라마·영화 제작사들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OTT 간 콘텐츠 경쟁, 배우들의 출연료 급등, 광고시장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제작비가 급등한 가운데 풍부한 자금력을 내세운 '해외 OTT 공룡'들에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잠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韓 드라마 제작편수 4년 만에 최저

20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올해 방영 시점 기준 국내 드라마 제작편수는 총 105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98편)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2023년(123편)부터 2년 연속 감소세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만 해도 한국 드라마 제작편수는 폭발적 성장을 보였다.
코로나19 팬데믹 특수를 계기로 OTT 업체가 오리지널 드라마 공급을 확대하면서 그해 드라마 제작편수는 141편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넷플릭스가 일찌감치 한국에서 자리잡은 상황에서 지난 2021년 말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까지 한국시장에 나란히 진출해 경쟁에 불을 지핀 결과다. 위기감을 느낀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 업체들까지 당시 앞다퉈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OTT 드라마 콘텐츠 경쟁은 제작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가장 큰 원인은 배우들의 '몸값' 인상이다. 콘텐츠를 사실상 전 세계에 팔 수 있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업체들은 해외에서 인지도가 있는 국내 'S급 톱스타'들을 주연으로 대거 기용했다. 막대한 자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반면 제작비 한계를 안고 있는 국내 방송사·OTT 업체들은 콘텐츠 공급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업계에선 공룡 OTT의 자본 영향으로 국내 방송사는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배우 몸값이 올라 비교적 신인급 배우를 쓸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영향력 차원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장르마다 다른 상황을 감안해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드라마 제작비는 최대 8배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2019~2020년만 해도 편당 평균 제작비가 5억~6억원 수준이었지만, 해외 유통이 아닌 국내용 드라마 평균 제작비는 편당 최소 1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방송사 관계자는 "올해 '선재업고튀어' 정도를 제외하고, 스타 배우를 쓰지 않고도 성공한 드라마가 거의 없다"며 "국내 방송사가 제작한 드라마는 대부분 내수용인 데다 해외로 수출해도 일본이나 동남아시아가 사실상 전부여서 해외 OTT들과 상대가 안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문제는 글로벌 OTT에 한국 콘텐츠가 종속되고 있는 제작구조다. 해외 OTT는 오리지널 드라마 제작비를 모두 부담하며 리스크를 안는 한편, 2차적 저작물 등 지식재산(IP)을 모두 소유한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오징어게임'은 제작비 약 250억원으로, 1조원 이상의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제작사가 손에 쥔 건 총제작비와 10~30%의 마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시장도 넷플릭스가 장악

영화시장도 OTT로 무게중심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집에서 영화 시청 등 여가를 즐기는 '홈코노미'족이 크게 늘어나면서 영화관 수익은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한국 영화산업 극장 매출 비중은 2019년 76.3%에서 2022년 68.0%로, 3년 만에 8.3%p 떨어졌다.

코로나 장기화로 영화 제작이 중단되며 자금난에 허덕인 배급사들은 IP를 모두 내주는 계약조건에도 제작원가 이상을 보전해주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이 같은 제작구조가 이어지며 한국 영화가 싸게 OTT에 공급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작사들은 협상 주도권을 사실상 빼앗긴 상태다.


김정현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넷플릭스가 압도적 사업자가 되면서 원가 기준 평균 107% 등 초반 대비 매우 낮은 수익을 제공하고 있다"며 "정액 판권 계약으로 인해 사실상의 독점 제공이 된 상황인데도 넷플릭스에 여전히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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