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붓끝에 담긴 고향과 자유에 대한 갈망
2024.10.21 18:31
수정 : 2024.10.21 18:31기사원문
황혼 녘 풍경을 즐겨 그려 '황혼의 화가'로 불리던 윤중식은 2012년 작고 전까지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작고하던 그해 상수(上壽, 100세)를 기념하는 전시도 열어 그의 예술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1913년, 평양에서 미곡장과 정미소를 운영하는 부잣집에서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윤중식은 천생 화가였다. 어린 시절 음악과 미술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운동에도 능한 다재다능했던 그는 1935년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 서양학과에서 공부했는데, 이미 1931년부터 여러 차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해방 후에는 제 2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고, 이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한국 서양화단에 탄탄한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또 교육자로서 창덕여고와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지만, 그의 삶의 중심은 늘 성북동 화실에서의 창작활동이었다.
한국 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월남하던 중 해주 근처에서 아내와 큰 딸과 헤어졌고, 갓난 아기였던 막내딸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아들 하나만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한 윤중식은 평생 실향민으로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고향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그렸다. 그의 작품에 특히 새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건너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안타까움과 향수일 것이다.
일본 유학 당시 마티스의 제자에게 수학했기에 그의 작품은 야수파적 경향이 강하다. 한국의 자연미와 향토적 서정미를 단순한 형태와 두텁고 강렬한 색채, 굵은 검정 윤곽선으로 담았다. 또 석양빛을 연상시키는 노랑과 주홍 계열의 색을 자주 사용하며, 단순하면서도 안정된 수평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이번 경매 출품작 '풍경'은 이러한 윤중식의 회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황색과 녹색의 강렬한 대비와 자유로운 붓질로 날아가는 새와 주변의 자연 풍경을 담아냈다. 이는 단순한 일상의 기록을 넘어 작가의 내면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그의 회화가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동시에 예술적 자유로움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손이천 K옥션 수석경매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