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8년간 2780억... 은행원들도 "신뢰 깨졌다"

      2024.10.22 18:17   수정 : 2024.10.22 18:17기사원문

#. "시재금에 손대는 일은 은행원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드라마 속 범죄가 제가 다니는 은행에서 현실로 벌어지니 참담하고 부끄럽다."(A은행 21년차 부장)

#. "동기들과 얼마나 챙기면 '감옥에 가도 괜찮을까, 100억? 20억?' 농담을 하던 중 문득 웃으며 할 말이 아니라고 느꼈다.

"(B은행 5년차 대리)

은행권이 금융사고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은행권에서 횡령·유용 사고는 155건, 배임은 35건 발생했다. 총사고금액은 2781억원에 달했으나 회수율은 9.1%(252억원)에 불과했다. 연이은 사고에 은행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와 '은행원 개인의 일탈'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다.
현직 은행원들이 스스로 금융사고의 원인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자신들의 일탈과 해이에서 찾고 있을 만큼 금융의 본질인 '신뢰'가 무너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파이낸셜뉴스는 22일 현직 은행원 100명에게 '횡령, 비리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복수응답 가능)고 물었다. 절반이 넘는 55명이 '구성원의 도덕적해이'를 지목했다.

B은행의 대리는 "그 어떤 시스템도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속이려고 들면 막기 쉽지 않다"면서 "은행권 사건·사고는 직업적 윤리의식의 문제"라고 짚었다.

금융감독원 출신인 A은행 감사는 "디지털부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 내부통제 시스템을 철저하게 마련하고 현금이나 거액을 다루는 업무에는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는 절차를 만들었지만 사고를 원천봉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궁지에 몰린 사람이나 도덕적 마음이 흐트러진 사람이 마음먹고 치는 사고를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은행에서 발생한 사고의 피해는 고스란히 영업현장에서 고객을 마주하는 동료 은행원들에게 돌아간다. C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지점장은 물론 지역본부장부터 동료들까지 인사평가에서 영향을 받는다"면서 "사고자의 면직은 당연하고, 지역본부장이 옷을 벗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31명이 '성과(KPI) 중심의 조직문화가 금융사고로 이어졌다'고 답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부실한 여신심사가 부당대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지점이나 팀의 성과를 위해 부실한 대출신청 서류에도 '눈감아주는 문화' '못본 척하는 문화'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수원 성수용 금융감독원 파견교수는 "금융회사는 국민의 소중한 재산으로 상품을 만드는 만큼 금융회사 직원이라면 일반 사기업보다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며 "단기적으로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윤리의식 재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KPI 중심의 성과급 구조를 손질해 재무적 성과 이외의 성과를 인정해주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성원의 도덕적 재무장과 조직문화 개선으로도 우선은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밖에 은행원들은 금융사고 대책으로 '감사를 위한 감사'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방안이 아니라 포상(인센티브)을 통한 사전예방, 안전한 내부고발 통로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mj@fnnews.com 박문수 김동찬 이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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