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세 잔 취기에 생각 따로 핸들 따로… 얼마 못가 앞차 충돌
2024.10.24 18:14
수정 : 2024.10.25 19:21기사원문
"쾅!"
약간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했다. 1분 만에 사고가 났다. 감각이 둔해져 교차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본지 기자는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제공하는 음주운전 가상현실(VR) 체험을 직접 해봤다. 약취 상태에서도 운전에 큰 어려움이 느껴져 사고가 잇따랐다. 전문가는 적은 양이라도 음주하면 뇌에 영향을 미친다며 음주운전을 자제할 것을 조언했다.
■핸들 돌려도 내 맘대로 안 돼
24일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 가운데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0.149% 수준이었을 때 사고를 낸 경우가 41.9%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0.15~0.199%의 만취상태가 뒤를 이었다. 면허 정지수준(0.03% 이상)인 0.03~0.049% 구간과 0.05%~0.079% 구간에서의 사고도 각각 5.8%, 15.1%를 차지해 적지 않았다. 치사율은 0.08~0.149% 구간(0.9%)보다 0.03~0.049%(1.3%), 0.05~0.079%(1.8%) 구간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제공하는 음주운전 체험에서는 소량의 음주 시에도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체험 기기는 실제 차량 같이 핸들과 계기판이 갖춰져 있고, 그 앞에는 음주 상태에서 보이는 도로의 모습을 화면으로 구현한 형태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로 설정하고 운전해보니 화면으로 보이는 모습이 급속도로 흐릿해졌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는 일반적으로 소주를 세잔 마셨을 때 취한 수준이다. 시력이 매우 나빠진 상태에서 안경을 벗고 운전하는 듯 했다. 차선을 보는 시야도 좁아지고 차간 거리에 대한 감각이 둔해졌다. 자연히 반응 속도도 느려졌다. 체감상 핸들을 꺾어도 0.5초 뒤에 차량이 움직였다. 과속을 하고도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다.
아찔한 상황도 계속 이어졌다. 화면 상에 갑자기 보행자가 툭 튀어나오면서 이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침범했다. 한번 선을 넘자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좌우로 왔다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핸들을 돌려도 이에 비해 차체는 뒤늦게 움직이면서 의도한 것보다 과하게 방향이 꺾였다. 0.05% 수준으로 취한 상태에서 시속 50km로 1분 정도 주행을 하던 중 교차로에서 급작스럽게 나타난 오토바이와 충돌하고 말았다.
만취 상태인 혈중 알코올 농도 0.15% 정도에선 체감 반응속도가 1초 정도로 늘어났다. 첫 출발부터 방향이 잘 잡히지 않았고, 핸들을 돌리며 중심을 유지하려 해도 좌우로 휘청거리는 현상이 심해졌다. 시속 40~50km로 서행했음에도 2차선에서 앞에 있던 차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충돌할 뻔했다. 차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었지만 결국 1차선 옆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한두잔도 방심 못 해"
전문가는 조금이라도 음주했다면 운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우 한국도로교통공단 안전교육부 조교수는 "한두잔만 마셔도 알코올이 뇌까지 도달한다. 뇌 반응 속도가 0.1초라도 느려졌다면 운전하는 데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통계상 혈중 알코올 농도 0.03~0.09% 수준에서의 치사율이 높다. 한두 잔도 결코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술을 마신 양에 따라 얼마나 음주 상태가 지속되는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술 한잔(소주 기준 50ml·맥주 기준 250ml)당 완전히 분해하는 데 1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체형을 가진 남성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사람에 따라 알코올 분해력이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숙취가 심한 편이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최은솔 이해람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