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안보 흔든 北파병… "美대선 이후 한미동맹과 더 강화"
2024.10.28 06:00
수정 : 2024.10.30 04:51기사원문
최근 격화되는 중동 정세와 북한군의 러시아 전쟁 파병이라는 두 개의 '글로벌 전쟁 이슈'로 인해 국제 정세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중동 정세는 이스라엘에 의한 하마스·헤즈볼라 수장의 잇따른 제거와 '저항의 축' 지도부 와해 작전에 이어 이스라엘이 한 차례 유보했던 이란에 보복 기습 공습에 나서면서 시시각각 격화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이 기정사실화 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자까지 러시아에 파견하면서 실질적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모양새가 국제 질서와 한반도 정세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북한군의 러시아 전쟁 파병 이후 유럽에선 '우크라이나 파병' 주장이 역(逆) 도미노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한미일도 북한군이 러시아 용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장 투입이 미치는 영향 분석과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검토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 등 안보라인에선 향후 전개되는 변화에 맞춰 그동안 배제됐던 살상무기 지원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안보 정세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미국 대선이 내달 5일(현지시간)로 바짝 다가오면서 글로벌 안보정세와 맞물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진단해 본다.
■중동전, 이스라엘 막강 전투력은 '경제력'이 바탕
격화되고 있는 중동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이 지난 26일 새벽(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공습했다. 지난 1일 이란이 탄도 미사일 200을 발사 공격한 것에 대응해 보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 시설을 정밀 기습 직전에 여러 루트를 통해 이란에 표적을 미리 알려줘서 공격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차례에 걸친 공격은 100여대의 무인기와 전투기가 투입됐고 이란 내 20개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고 알려졌다. 이란이 자국 영토에 군사적 타격을 받은 건 이라크와의 전쟁 이후 30여년 만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다시 보복해 이스라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면 더 중대한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란은 폭격 피해는 제한적이라면서도 즉각 보복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보여줬던 막강한 전투력은 우선 주변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는 경제 규모에 있다는 지적이다.
2023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국가 GDP(국내총생산)는 5640억달러인 반면 유엔 추정 하마스의 기반이 되는 가자 지구의 GDP는 20억달러에 불과했다. 헤즈볼라의 기반이 되는 레바논 시아파의 GDP도 68억달러 정도로 추정돼 각각 약 282배, 83배 정도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더해 미국의 막강한 군사와 경제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주변 국가 대비 훨씬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결 국면은 이와는 차이가 있다. 영국의 외교분야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GDP는 이스라엘이 5250억달러인데 비해 이란은 4130억달러였다. 국방비는 이란 74억달러에 비해 이스라엘은 190억달러로 이스라엘이 2.6매 많았다. 다만 이스라엘은 인구 960만명에 비해 이란은 8860만명으로 차이가 커 장기전에 나서면 이스라엘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北 러시아 파병..지정학 경계·공간 넘은 안보위기
북한의 러시아 대규모 용병 파병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선 우크라이나에 서방진영의 지상군 파병 논의도 재점화되고 있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 가브리엘리우스 란츠베르기스가 지난 21일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보낸 논평에서 북한 병력과 탄약이 러시아 군대에 보급된다는 정보가 확인되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지상군 투입 제안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와 발트삼국 등 러시아와 인접한 유럽 국가들도 유사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지원 회의에서 지상군 파병 가능성을 언급하고 이후에도 파병의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2월엔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스웨덴 등은 파병에 반대했지만, 이번엔 다른 움직임이다. 다만 독일과 대선을 앞둔 미국은 강력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파병 등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군이 러시아로 파견돼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지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첨단 군사 기술을 이전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방 외교 안보 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추진잠수함, 군사 정찰위성 개발에 필요한 기술 이전 가능성과 특히 북한 병력이 러-우 전쟁에 참전을 통한 실전 경험 축적이 재래식 전력 측면에서 한국 안보에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러-우 전쟁으로 지구촌은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는 지정학 경계·공간을 넘어 융합 기제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군의 러-우 전장에 용병 파병은 한국 등 유사입장국의 대리전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의 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반 센터장은 이어 북한군 파병이 러시아 레드라인 넘은 것인지 판단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묵인은 북러의 행태를 인정해 우리에 안보에도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역효과가 파생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 정교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한반도가 북중러의 군사 외교적 압박과 대리전 지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결정적 전환기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센터장은 또 "한국은 유사입장국과 규탄성명 등을 주도하며 국제사회에 북한군 파병의 불법성과 성격규정 명확히 해야 한다"며 "다국적 정보팀 구성을 통한 정보공유와 파병 북한군의 모니터링을 강화해 북러의 의도와 목표를 저지하는 유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이를 계기로 대(對)러시아 레버리지 제고 기회로 활용하고, 한반도의 대리전 전장화 우려를 원천차단하는 지략수립도 필요하다고 반 센터장은 제언했다.
■美대선 후 韓 안보 생존전략은 동맹강화와 자강
내달 초로 예정된 미국 대선도 한반도 안보 이슈와 직결돼 있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의 대외 정책이 냉전 초기보다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상황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냉전 초기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 적극 개입하며 자유주의 진영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당시 과도한 국력 소모로 인해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국내 반발 여론이 점차 고조됐다. 결국 미국은 국력 투사를 축소하기 시작해 1970년대 닉슨 독트린 하에 주한미군 감축과 베트남 철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이러한 기조는 민주당 카터 행정부로 이어져, 1979년 미국은 대만과 일방적으로 단교하고 미국-대만 방위조약을 폐기하며 중국과 수교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우방국과의 사전 협의는 일절 이뤄지지 않았다고 손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미국의 모습은 이 같은 대외정책 전환을 추진하기 직전 시점의 미국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2016년 대선 이후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면서 대외 개입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공화당과 민주당 간 공유되던 자유 국제주의에 대한 합의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봤다.
최근 트럼프 진영에선 한국이 바이든 행정부와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조기에 타결한 사실에 대해 불쾌해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동맹의 가치를 의문시하고 때로는 동맹국에 강압적인 태도와 행보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 다수가 이에 지지를 표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손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미국 대외 정책에서 거래적(transactional) 성향이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가 당선될 경우 방위비 협정을 파기하고 한국에 더 많은 분담금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재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되는 한미일 간 안보 협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반면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와 유사한 외교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기조는 이어질 것이지만, 민주당 역시 미국 사회 내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반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손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또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었음에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바이든 행정부도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에 그친 사례는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국제관계론과 국제정치경제학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Robert Gilpin)은 쇠퇴하는 패권국이 점차 약탈적(predatory) 외교 정책을 추구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미국이 과연 쇠퇴하고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만약 미국 패권이 쇠퇴하는 중이라면 한국의 외교적 운신의 폭은 크게 제약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손 교수는 진영 대립 구도가 고착화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은 과거 냉전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등 우방국과의 안보 협력을 적극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로서 한국에 가장 중요한 최선의 선택지는 미국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국 외교·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하고 동시에 자주적 방위 능력을 확충하는 노력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결국 가장 확실한 길은 '자강'이라고 강조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