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2024.10.31 18:31
수정 : 2024.10.31 19:40기사원문
규제라는 한자의 뜻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법으로 누른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 법을 통한 통제는 다 규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녹색등이면 사람과 차량이 움직일 수 있고, 적색등이면 멈춰 서야 하는 것도 일종의 규제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현 윤석열 정부까지 역대 정부 모두 규제개혁을 중요한 국정목표로 들어왔다. 그만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과도하게' 많다는 인식, 즉 규제완화에 의해 민간의 경제적 활력이 높아져 성장 등 경제적 성과가 좋아진다는 판단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규제개혁을 해왔으면 이제 그동안의 성과에 만족할 수도 있을 듯한데 아직도 이를 목표로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두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의 개혁이 의도한 바와 달리 지지부진했거나, 너무나 많은 규제가 새로 만들어져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개혁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이거나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동안의 성과가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규제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실제 행정부에서 새로 만들어내는 규제는 전체 신설 규제의 10%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나머지는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행정부에서 만드는 신설 규제는 규제개혁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심사가 완전한 기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개정권고가 나오면 완화 혹은 전면수정을 하게 되는 것이 상례인데 국회발 규제에는 그런 제동장치가 없다.
그러면 국회는 왜 그렇게 많은 규제를 생산하는 것인가. 이는 아마도 정치의 속성이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일단 문제된 행위에 대한 과할 정도의 규제를 국민이 요구하면 정치인은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리할 정도의 시작은 후일 반드시 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또다시 법 개정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당초 이런 가능성을 예측하고 신중한 입법을 했어야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이를 다 예측하고 입법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는 하다. 그렇지만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여론의 힘을 믿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현재 행정부 입법에 적용되고 있는 규제영향 평가를 모든 입법 추진 시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와 같이 규제가 수반되는 입법에는 그 영향평가를 첨부하자는 것이다. 이를 담당할 수 있는 기관으로 국회 예산정책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평가는 법안 부속서에 포함되므로 실제 입법 시에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강제적이진 않지만)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 평가가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대규모 예산투자가 요구되는 사업을 대상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처럼 계량화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아직 전반적으로 계량화된 수준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현재 수준을 뛰어넘는 정량적 분석기법이 개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렇게 정량적 분석이 가능한 사업은 가능한 대로 그렇지 못한 것은 정성적 평가를 하여 이를 반영한 입법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신설 규제뿐 아니라 기존 규제의 개혁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규제란 도입 시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필요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과감한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개선이라도 해야 한다. 기존과 신설을 불문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개혁은 국민경제 발전에 필수적 요소라 하겠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