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무력화 부추기는 이스라엘, 유사입장국 맞나?

      2024.11.05 06:00   수정 : 2024.11.05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이 유엔(UN)과 선을 긋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2024년 10월 28일 이스라엘 의회는 팔레스타인 유엔난민구호기구(UNRWA)가 자국 및 점령지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파괴력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유엔 활동이 일부 위축되는 수준에서 그칠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전면적으로 활동을 못 하게 되는 수순을 밟을지는 미지수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점도 없지는 않다.
전쟁 목표 달성에 불리한 요소를 식별하여 이에 대처한다는 측면도 있고, 해당 기구 소속 일부 직원이 지난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한 정황에 불만을 토로했던 사실도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번 조치는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우려를 증폭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 유사입장국 공조 약화가 예상된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유사입장국으로 규정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 영국 등 소위 서방세계의 유사입장국은 이스라엘이 UNRWA 활동을 금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해 왔다. 이번 결정으로 이스라엘이 서방세계와는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유사입장국으로서의 속성이 약화되는 상황이 예상된다. 나아가 ‘이중기준’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냉전 질서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 유사입장국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유엔 무시 행태를 규탄을 하지 않으면 유엔 약화의 주범인 러시아를 규탄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스텝이 꼬일 수 있는 것이다. 소위 국제 규범과 규칙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어야 하기에 이스라엘이 이를 지속한다면 더 이상 유사입장국이 아니거나 최소한 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국제기구의 역할이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 특히 유엔 기능 약화가 심화될 수 있다. 신냉전 국제질서하에서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악용하면서 유엔 기능 무력화가 도마에 오른 상황이다. 유엔의 3대 기능 중 하나인 ‘인권’을 현장에서 챙기는 UNRWA의 임무를 금지시키는 것은 이스라엘도 유엔 기능 무력화를 돕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다. 유엔 기능을 지켜내려는 현상유지 진영의 목표 달성이 현상변경 세력이 아닌 내부 행위자에 의해서 요원해지고 있다는 점은 그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40여 년간 운영되어 온 UNRAW 사무소가 2024년을 기점으로 폐쇄 위기에 직면한 것은 유엔 기능 무실화가 단순 우려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불길한 조짐을 증폭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셋째,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약화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고 이는 미국 패권의 약화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번 조치에 대해 다시 한번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무기지원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외교적 자존심에도 상처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엔 거리두기는 특정국가의 단순 행태 외에도 과도기 국제질서라는 구조적 요소에도 주목할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힘에 의한 패권질서가 가동되지 않고 규칙기반 질서도 약화된 상황에서는 기존 원칙을 준수할 동기보다는 이를 무시하더라도 국익에 올인하려는 셈법이 우선시되는 역학이 부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셈법 부상을 조기에 막아내지 못하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유를 지켜내고자 하는 유사입장국이 이스라엘에 단호히 주문하는 노력과 그 강도를 높일 수 있는 외교적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GPS(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와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자유와 인권을 강조해 온 핵심국이기에 한국도 이러한 노력의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가치외교와 국익외교의 융합이 더 어려워진 시점에서 원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일석이조의 효과를 달성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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