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치판 바꾸는 유토리세대
2024.11.05 18:31
수정 : 2024.11.05 18:31기사원문
정치 냉소주의의 뿌리에는 일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전통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 사무라이 시대부터 이어진 '본인 일만 잘하면 된다' '분수를 알자' 식의 태도는 개인이 국가나 정치 문제에 신경쓰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 사고방식은 세습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어차피 안 바뀌어"라는 냉소로 굳어졌다.
자민당엔 장기집권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유권자의 무관심이 커질수록 투표율은 낮아졌고, 자민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자민당의 고정 지지층은 더욱 강력한 힘을 냈다. 조직은 훨씬 잘 작동했다.
당시로선 역대 최저 투표율(59.3%)을 기록한 2012년 중의원(하원) 선거 때가 그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폭발 대응과 관련 '아마추어 정부'로 낙인 찍힌 옛 민주당은 자민당에 정권을 반납했다. 이후 네 차례 연속 일본 선거에선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했다. 투표율은 모두 50%대였다.
이번 중의원 선거의 투표율도 53.85%로 사상 세번째로 낮았다. 정치비자금 스캔들과 고물가 문제로 인해 국민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권자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민심이 정치와 거리를 둔 탓에 자민당은 제1 정당 포지션을 지켰다.
일본 정치의 악순환이 또다시 반복된 것일까. 그런데 올해는 좀 달랐다. 자민당 단독 과반은 물론 공명당과의 연립여당 전선에서도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자민당은 191석, 공명당은 24석을 얻어 합계 215석에 그쳐 중의원 465석의 과반인 233석을 못 넘었다. 일본 정계에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된 십수년 만의 사건이다.
야당은 약진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제1야당이 전체 의석수의 30%에 해당하는 140석 이상을 확보한 것도 2003년 민주당이 177석을 얻은 이후 21년 만이다. 국민민주당도 7석에서 28석이 됐다. 야당은 유권자에게 "자민당 말고도 대안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이제는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변화의 중심은 젊은 유권자들의 참여다. SNS에 익숙한 '유토리 세대'(1987~2004년 출생)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이전의 '사토리 세대'(1980년대 후반 출생)와 정반대 성향을 보인다. 자민당의 오래된 방식과 정책에 피로감을 느끼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젊은층의 절반 이상이 자민당에서 소수 야당으로 갈아탄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층의 이탈은 자민당의 콘크리트 조직력에 균열을 내고 여야 협치의 길을 텄다.
경제와 환경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자민당은 주로 기존 경제정책과 방위정책에 집중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보다 실질적인 경제개혁과 환경보호정책을 요구하며 자민당과 정면 충돌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적 요구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자민당은 더 이상 유권자의 지지를 담보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2024년 중의원 선거는 자민당에 큰 숙제를 남겼다. 고령 지지층에만 의존하는 낡은 정당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정치참여 세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 세대의 등장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내각과 자민당을 정조준하고 있다.
km@fnnews.com 김경민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