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왜 한국 조선인가

      2024.11.11 18:02   수정 : 2024.11.11 18:02기사원문
국내 최대 8200t급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이 이달 중 해군에 인도된다. 2년 전 7월 바다에 띄워, 그간 500여개 항목의 시험평가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해상 작전은 탐지·추적·요격을 3축으로 은폐와 기동성이 중요한데, 이를 통합적으로 갖춘 국내 첫 이지스구축함이 정조대왕함이다.

HD현대중공업이 자체 설계해 2년간 건조했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울산조선소에서 출항을 앞둔 정조대왕함에 승선한 적이 있다.
날렵하고 단단한 선체(길이 170m, 폭 21m), 치밀한 내부구조(500개 이상 격실), 함정 앞뒤에 장착된 고속·은폐형 무기체계가 인상적이었다. 최대 400㎞ 떨어진 미사일 표적을 탐지·요격하고 장거리 대잠어뢰도 발사할 수 있다. 이지스함을 설계·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정도다.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한미 간 조선 협력을 꺼냈다고 한다. 왜 조선 협력일까. 우선 미국의 쇠퇴한 조선 인프라 때문이다. 미국은 1970년대까지 최대 18만명의 노동자가 70척 이상의 대형 상선을 건조한 세계 최대 조선국가였다. 하지만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친시장 정책으로 조선산업 지원을 끊자 1989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히 무너졌다. 반면 한국은 구축함·호위함·지원함 등 다양한 중소형 함정 설계·건조능력을 갖추고 있다. 4000t급 이하 중소형 잠수함도 한국이 독자 설계·건조할 수 있다. 8000t급 이지스함 1척 건조비가 우린 대략 1조원대다. 미국보다 비용은 절반, 기간은 3분 1 정도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중국의 급속한 해상전력 팽창도 배경이다. 중국이 최근 대만해협 포위훈련에서 과시한 해상 전투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아시아 최대 1만3000t급 구축함을 주축으로 최대 사거리 500㎞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대형 강습상륙함을 운용 중이다. 전투함 수에서도 2015년 미국을 앞질렀다. 중국은 전함 234척을 운용 중인데, 미 해군 219척(군수·지원 함정 제외)보다 많다. 중국은 내년에 미국(355척)보다 많은 400척 이상의 함정을 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다롄조선소, 장난조선소(상하이) 등 국영조선소에서 함정 10여척을 찍어내듯 동시에 건조하는데 세계 최고 속도다. 이를 미국은 국가안보의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상선을 대규모 수주한 중국 조선소가 조선분야 설계·공정기술을 흡수했고, 함정 건조에 상당수 이전됐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미국 행정부가 지난 4월 중국의 불공정행위를 문제 삼아 조선산업에 대한 301조 조사를 승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6월 맥킨지는 '미국 조선소의 미개발 잠재력'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을 미국 함정·잠수함 공급망에 포함시켜 안보동맹 공유자산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중 간 대만해협 충돌과 같은 유사시 소실·손상된 군함을 수리·재보급하는 데, 탄탄한 기반을 갖춘 중국의 해군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데 조선강국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다. 사업감각이 뛰어난 트럼프가 이를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압박과 협상을 병행해 실리를 챙긴다. 추진 속도도 빠르다. 한국을 '머니머신'이라고 하는 트럼프는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할 게 분명하다. 조선 역량을 유리한 협상 지렛대로 삼을 만하다. 미국 내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공급망과 설계·건조·운용능력 등 총체적 역량으로 태평양함대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와 신조까지 다양한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한미 간 해양방산 협력은 올 들어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뎠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지난 7월 미 해군 함정 정비협약을 체결, MRO 입찰자격을 얻었다. 한화오션은 거제조선소에서 4만t급 미 군수지원함 한 척을 정비 중이다.
과거에 없던 파트너십이다. 이를 확장하면서 우리가 얻을 실익, 이를 무엇과 교환할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조선에 꽂힌 트럼프의 선택을 기회로 잡아야 한다.

skju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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