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마음속 인종·성차별주의… 해리스 패배의 구조적 원인
2024.12.02 19:21
수정 : 2024.12.02 20:41기사원문
트럼트가 백악관을 탈환했다. 그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신화가 성공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슬로건이 선거 압승의 본질적인 에너지였다.
마음의 심층구조를 독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인의 심성을 표현하는 단어로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란 말이 있다. '혼네'가 심층구조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그러한 현상을 두고 '속다르고 겉다른' 일본인이라고 비난한다. 트럼프 당선의 미국식 '혼네'와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구조(structure)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친척과 가족에 관한 이론을 구축한 레비-스트로스는 아메리칸인디언들의 신화를 대상으로 했다. 그는 이론가이자 철학자이지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에스노그라퍼'(ethnographer)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1955)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피란지인 브라질의 상파울루대학 시절에 행했던 아마존강 일대의 여행기다. 인간 마음의 저변에 자리한 개념으로서의 구조는 지질학의 지층구조, 마르크스의 하부구조, 심리학의 무의식 차원에 대비된다. 표면적인 사회조직들은 여러가지 조건에 의해서 변하지만, 심층의 사회구조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예로 든 것이 '주역'(周易)의 사상인 음양(陰陽)이다. 음과 양의 이분법이 아니라 양자의 변환(transformation), 즉 음의 속에 양의 요소가, 양의 속에 음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대대(對待, binary opposition)적인 현상을 말한다. 반대이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인간 현상의 바탕은 남과 여, 상과 하, 좌와 우 등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얘기다.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이분된 현상의 변환에 의한 역동성이다. 그것이 세상의 질서를 움직이는 힘이고, 음양 변환의 과정이 오행(五行)이라는 설명이다. 구조변화는 시스템변화이자 혁명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평상시에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금기인 윤리적 현상을 보여주는 미국사회가 우리의 관심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미국인들은 표면적으로 인종과 성에 관련된 차별의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규범이자 미국문화의 전형성이다. 법적 제재나 도덕적 비난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가 인종과 성에 관련된 차별이다. 따라서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와 관련된 불만은 일상생활 속에서 금기가 되고 역차별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다.
미국이란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한 두 가지 차별이 미국사회의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한다. 비밀이 보장된 투표 행위가 억눌렸던 집단 무의식이 발현되는 찬스일 수 있다. 트럼프가 첫번째 승리했던 2016년 선거의 상대는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당시 힐러리는 유권자의 전체 득표수에서는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숫자에서 근소하게 패했다. 성차별이 반영된 선거였다는 명시적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상대는 카멀라 해리스라는 유색인종 여성이었기에,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오바마와 함께 등장한 해리스'의 그림에 대한 역차별의 저항이 움직였다.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미국문화의 구조적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를 읽지 못한 결과다. 투표 직전과 출구조사까지 '박빙'이라는 여론조사의 결과가 뒤집어진 것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여론조사의 결과가 미국인의 심층구조가 노출되는 것을 덮어버렸다. 미국의 위대함(MAGA)을 지탱하는 심층구조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숨어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하기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현상일 수도 있고, 사람은 자신의 등 뒤를 볼 수 없는 현상의 결과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1918년 만들어진 워싱턴체제가 지난 100년 동안 지구촌을 쥐락펴락한 미 제국주의의 판도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물론이고, 목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전장도, 대만 사람들이 전쟁 공포에 휩싸여 있는 원인도 미국의 국제정치와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배가 현대 인류사회의 장래를 결정하고 있다. 인간의 문제에 관한 한 어떤 형태라도 답을 내놓아야 하는 인류학자의 입장에서 결코 '패싱'할 수 없는 사건이다. 전체 유권자의 득표수에서뿐만 아니라 선거인단 숫자에서도 트럼프가 압승했다. 해리스가 참패한 원인에 대한 미국 언론의 분석은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선거 결과의 예측은 여론조사에 근거한 것이고, 여론조사의 방법은 통계 분석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통계 분석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사회과학의 중심적인 방법론으로서 성장해온 통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힌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대상이 대규모일 경우에 최적의 방법이 통계라는 점에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것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는 경향일 뿐 사실이 아니다. 수치로 드러난 경향을 읽어내는 전문가의 역할이 있다. "통계는 미니스커트다." 이것이 나의 오랜 신조였고, 강의시간에도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다. 드러난 부분을 많이 보여주고, 그 위의 가려진 부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패션이 미니스커트다. 결코 핵심은 보여주지 않는다. 핵심을 보여주게 되면, 그것은 통념상의 옷도 아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여론조사라는 것이 나의 통계에 관한 신조를 정확하게 대변했다. 사람은 의사표시와 실질행위 사이에 차이를 낼 수 있는 존재다. 통계는 언행(言行), 즉 말과 행동 사이에 개입되는 생각(思)의 과정을 읽어내지 못한다.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영글어진 미국사회의 심층구조가 기반인 'MAGA' 신화가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두고 볼 일이다. 차별 역사가 구조화된 미국문화에서 발현되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살얼음판을 디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거들떠볼 리가 없다. 노골적인 차별의식이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횡행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역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심층구조를 감추기 위한 전략성 정책이 표면화할 수도 있다. 전쟁(군사)과 평화(외교)가 교차하는 한반도의 국제정치적 외줄타기는 미국문화의 심층구조를 읽어야 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