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비용 연 30조, 임금개혁 없인 쉽지 않다
2024.12.02 19:31
수정 : 2024.12.02 19:31기사원문
이를 기준으로 도입 5년 차에 드는 고용비용은 30조2000억원까지 불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는데, 이 금액이면 청년층 근로자 90만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한다. 정년 연장 논의가 세대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계속 일터에 남았으면 하는 고숙련자뿐 아니라 생산성 낮은 저성과자까지 떠안아야 하는 기업 입장도 외면할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정년 연장 논의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생 여파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가 됐다. 생산가능인구는 가파르게 줄고 있는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은 계속 늘어 내년이면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선다.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우리만큼 빠른 나라가 없었다. 여전히 일할 능력과 의욕이 충분한데 정년에 막혀 일자리를 잃는 것은 개인과 기업, 국가 전체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경험이 축적되고 숙련된 인력에게 더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 이로운 일이다. 더욱이 청년층 유입이 끊겨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한경협 보고서에서도 확인되듯 획일적인 정년 연장의 과다한 비용과 이로 인한 청년층의 피해다.
제도개혁 없이 지금 상태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끝없이 오르는 인건비로 기업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기업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 논의는 무의미하다. 이를 위해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것이 낡은 임금제도 개편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경직된 현행 임금시스템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직무형 임금체계와 성과 중심 보상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우리도 호봉제 대신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서두르고, 이를 실행하는 기관부터 정년 연장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고령층 지속 고용은 업종별, 기업별로 사정이 제각각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2023년 고령자고용현황' 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 비중 업종별 격차는 62.5%p에 이른다. 농림어업의 고령자 비중이 69.2%인 반면 정보통신업은 6.7%에 불과하다. 이것이 현실인 만큼 기업들이 경영형편에 맞춰 노사 자율로 고용방식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바람직한 정년 연장 방향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쪽이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숙련된 근로자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고령 근로자도 기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적정 수준이어야 청년 신규 채용 문도 열어놓을 수 있다.
막무가내로 정년 연장을 추진하면 청년들의 분노와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불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시장 유연화 등 노동개혁이 우선돼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정년 연장 입법을 내비치고 있는 정치권은 이런 요소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