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갖고 싶었던 '쉐이코'
2024.12.12 19:24
수정 : 2024.12.12 19:24기사원문
강원도 황지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청량리행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와 힘겨운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류인숙 작가의 수필집에 담긴 글이다. 봉제공장 '시다'와 카오디오 공장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서른이 넘어 늦깎이로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작가의 아픈 청춘에 위로가 되어준 노래, 그 노래를 틀어준 쉐이코 카세트에 관한 이야기다.
토머스 에디슨이 처음 녹음 기술을 발명했을 때, 소리를 담는 도구는 원통형의 금속 실린더였다. 에디슨에 이어 원반형의 SP(Standard-Playing) 음반을 발명한 이는 독일 출신 미국인 에밀 베를리너였다. 이보다는 조금 늦게 프리츠 플로이머가 얇은 두루마리 종이를 이용해 최초의 자기테이프를 발명한 것은 1928년이었다.
이후 1948년 LP(Long Playing)판이 개발됐고 자기테이프에 녹음을 하는 릴테이프도 개량되어 방송과 음악에 활용됐다. 지금도 음악 마니아들이 사용하고 있는 릴테이프는 음질이 LP판보다 좋긴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은 크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해 휴대가 가능한 책만 한 작은 크기의 카세트플레이어가 1963년 네덜란드 전자업체 필립스에서 개발돼 음악 혁명을 일으켰다. 발명가는 루 오텐스로 2021년 사망했다.
카세트플레이어와 라디오를 합친 카세트라디오는 산요나 파나소닉, 소니,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에 의해 개발됐다. 이제 막 라디오를 만들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 카세트라디오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라디오와 카세트플레이어, 전축을 하나로 합친 국내 최초의 카세트스테레오 전축을 내놓은 기업이 독수리표 성우전자다. 기능의 핵심은 LP플레이어의 번거로움을 덜어준 카세트플레이어다.
이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오디오이자 붐박스인 미니 카세트라디오가 출시됐다. 류 작가가 가졌던 쉐이코 카세트라디오다(동아일보 1976년 11월 9일자·사진).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가 휩쓸고 있을 때 갖고 싶은 물건의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삼성(산요)과 금성(히타치), 화신(소니)도 일본 기업들과 제휴해 카세트를 내놓았지만, 오디오 전문 기업인 성우전자의 쉐이코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 비쌌다. 1978년에 나온 쉐이코 카세트 SW-505S의 가격은 11만5000원으로 돼 있다. 당시 하급 공무원의 월급이 10만원이 넘지 않을 때였으니 한 달 치로도 살 수 없는 고가였다.
성우전자 조소하 사장은 공군사관학교 3기 통신전자장교 출신이라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 소리를 연구한 조 사장은 1966년 무렵 공장을 지어 조립 생산 방식으로 독수리표 전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질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며 기술력을 끌어올린 성우전자는 앞서 언급했듯이 1973년 국내 최초로 8트랙 스테레오 전축을 개발, 동남아로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성우전자는 쉐이코의 인기에 힘입어 1970년대 말 별표전축의 천일사와 함께 한국 오디오업계의 쌍두마차 반열에 올랐다. 종업원 1300명, 전축 월 생산 9000대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조 사장은 국내 오디오업계 일인자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1983년 성우전자는 부도를 내고 도산했다. 불황에 경쟁업체들의 도전이 거세지자 원가 절감을 위해 값싼 부품을 쓰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은 탓이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조 사장은 잠적했고 쉐이코의 인기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