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대응, 日에 완전히 밀렸다"… '코리아 패싱' 우려가 현실로
2024.12.18 18:05
수정 : 2024.12.18 19:56기사원문
계엄령 및 탄핵사태로 한국의 정책시계가 사실상 올스톱되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트럼프 2기 대응 골든타임을 실기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일본 등 주요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트럼프 당선인 면담이 줄을 잇고 있으나, '대미 최대 투자국'인 한국 재계와의 접촉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계엄사태 전에는 韓이 빨랐는데…"
18일 일본의 한 외교 소식통은 "계엄사태 전까지만 해도 일본 외교당국이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보기도 전에 먼저 주미 한국대사가 트럼프 당선인을 접촉하는 등 한국이 트럼프 2기 대응에 앞섰다는 게 중론이었으나, 이젠 완전히 뒤집혔다"고 밝혔다. 정치 리스크로 인해 한국이 트럼프 2기 대응에 완전히 밀렸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넘어야 할 파고가 매우 험난할 것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시선이다.
대만 TSMC를 비롯해 인텔,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에 제조시설을 짓고 있는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칩스법) 확정 소식이 잇따르고 있으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보조금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보조금 완전 백지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측의 설명이나 자칫하면 한국 기업만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상당한 상황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보조금) 때문에 55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지은 현대자동차그룹은 아예 IRA 보조금 지급대상 제외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美정책 향배, 누구도 설명 안 해줘"
기업과 정부가 '원팀'을 꾸려서 나서야 하지만 비상계엄 및 탄핵정국으로 인한 '권력공백 사태'의 후유증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만만치 않다.
최근 워싱턴DC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재계 고위 관계자는 "IRA 대응은 고사하고 세부적으로 보조금이 존치될지 말지에 대해 (미국 측이든, 우리 정부든) 누구 하나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문제가 되는 부분이 칩스법, IRA 등 보조금, 관세정책 등인데 미국 측에서 이런 산업 보조금과 방위비 분담금을 엮어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서포트 없이 기업이 이런 상황을 돌파해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미국상공회의소와 함께 워싱턴에서 개최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도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의 불참 속에 당초 기대치에 크게 못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총회 당시 양국 간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해야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는데, '알짜' 내용이 빠져 기업인들이 아쉬움이 컸다"며 "한국 정치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속도감이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2기 때는 정책 준비가 다 돼 있는 상태"라면서 "한국도 이에 맞춰 대응해 나가야 하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관련한 국내 논의가 지지부진하거나 아예 멈춘 상황이라 조급한 마음이 크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돌파 여력도 떨어진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 4년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실시하는 바람에 더 이상 내놓을 실탄(추가 투자)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1000억달러는 '입장료'로 내야 한국계인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오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임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