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OECD 수출신용협약 개정안, 韓 에너지 안보 위협"

      2024.12.18 18:11   수정 : 2024.12.18 18:11기사원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화석연료 관련 산업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 전면 중단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OECD 수출신용협약(수출신용협약)' 개정을 둘러싸고, 우리 정부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논의되고 있는 협약의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고, 이로 인해 국내 산업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더욱이 실효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중국 등 경쟁국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출신용협약 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 산업 피해 우려에 개정안 반대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수출신용협약 참가국 정례회의에서 우리나라는 튀르키예와 함께 협약 개정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영국,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국가가 공적수출신용기관의 화석연료 지원 종료를 지지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다른 입장을 보인 것이다.


수출신용협약은 OECD 회원국들의 공적 수출신용기관이 수출금융을 지원할 때 지켜야 하는 기준을 정해둔 협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이런 공적 수출신용기관에 해당한다.

OECD에서는 글로벌 탄소 감축을 위해 공적 수출신용기관의 금융 지원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예전부터 있었다. 2015년에는 석탄화력 발전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을 제한하기로 최초 합의했으며, 올해는 화석연료 가치 사슬 전체에 대한 금융지원을 막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과거 석탄화력 발전에 국한되었던 지원 금지 대상을 석유, 천연가스까지 확대하고 △탐사, 생산, 운송, 정제, 발전 등 화석연료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해 공적 수출신용기관의 금융지원을 금지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국내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이번 개정 논의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판단했다.

화석연료 관련 운송, 저장, 정유 및 발전소 건설 산업은 모두 대규모 시설과 설비를 갖춰야 하는 산업이어서 초기에 많은 장기 자금이 필요하다. 이런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서는 보통 금융지원 패키지가 함께 제공되며, 특히 안정적인 장기 자금지원을 위해 공적 수출신용기관이 주요한 금융지원 경로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 5년간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정유·석유화학 프로젝트에 121억 달러, LNG선 등 친환경 선박에 369억 달러를 지원하며 제2의 중동 붐과 조선업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협약이 현재 논의대로 개정되면 이런 산업 분야의 수주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등 경쟁국 반사이익 가능성 제기

협약 개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협약은 OECD 회원국 공적수출신용기관에만 적용되므로 민간 금융이나 OECD 비회원국의 금융지원까지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협약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민간금융이나 중국 같은 OECD 비회원국은 여전히 관련 산업을 지원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국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국 기업의 수주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결국 탄소 감축이라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채, 우리 기업들만 수주 기회를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OECD 가입국가가 앞장서야 한다는 협약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국가 경제와 산업,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공적 수출신용기관을 통한 재생에너지 분야 지원 확대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는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 2023년 4조3000억 원을 지원했는데, 이는 2020년 대비 약 4.5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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