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도 정부 지원책 나왔다...석화업계 '자발적 구조조정 본격화'
2024.12.23 17:06
수정 : 2024.12.23 17:06기사원문
정부가 23일 공급과잉 상황에 놓인 나프타분해설비(NCC) 합리화 등을 골자로 하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으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설비 폐쇄와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등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인센티브 내용이 담기면서 구조 조정을 위한 바탕은 마련됐다는 평가다.
정부는 이날 △공급과잉 NCC 설비 합리화 △글로벌 시장 경쟁력 보강 △ 고부가 제품 전환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다.
여기에는 설비 폐쇄와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등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고 이로 인한 고용과 지역경제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나프타와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대한 무관세 기간 연장 등을 통해 비용 절감을 유도하고, 고부가 소재 기술과 탄소감축 핵심 기술 등 관련 연구개발(R&D)을 강화하는 것도 포함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9개 NCC 기업을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올드한 방식"이라며 "기업의 자발적인 사업 재편 의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빨리 일어날 수 있도록 기존 제도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해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즉각적인 해결책이 제시됐다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학철 한국화학산업협회장은 이날 협회 명의 입장을 내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차질 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업계를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경쟁력 제고 방안이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주력산업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제시된 대책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중국이 석유화학 자급을 목표로 2018년부터 대대적인 설비 증설에 나선 가운데, 중동도 석유화학 산업을 미래주력산업으로 육성하고 나서며 범용품 중심의 성장 전략은 사실상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다. 주요 NCC 기업들은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지속하는 등 역대 최악의 업황을 기록 중이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 과잉 현상이 2028년까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그 이후에도 업황 회복 가능성이 작다는 데 있다. 이미 석유화학 업계는 생존을 위해 투자를 축소하고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지난 10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한 데 이어 현재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화학 포트폴리오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LG화학은 2022년 3월 대산 SM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 3월 여수 SM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여수공장의 폴리염화비닐(PVC) 생산 라인을 일부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효성화학은 최근 특수가스 사업을 그룹 계열사에 매각하며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긴급 수혈했다.
정밀화학, 배터리 소재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산업구조로의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기존 폴리염화비닐(PVC)이 가진 단점인 내열성을 극복한 초고중합도 PVC를 개발했다. 롯데케미칼은 강철 소재 대비 약 30% 무게를 줄인 '열가소성 장섬유 복합재(LFT)'를 개발하고 모빌리티 구조물, 가전제품, 산업자재 등에 적용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고기능성 타이어용 합성고무(SSBR)와 이차전지 신소재로 주목받는 탄소나노튜브(CNT)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업계에선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대책 발표가 늦춰지거나 추진 동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던 만큼 일단 정부가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은 것 자체에 대해 안도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탄핵 정국 속에도 불황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산업에 뭔가 하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이라며 "정부의 서포트로 기업들이 자생, 회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진행돼야 한다"며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