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뮤추얼펀드 스캔들/정삼영 미국롱아일랜드대 교수
2003.11.20 10:23
수정 : 2014.11.07 12:18기사원문
추수감사절을 며칠 앞둔 뉴욕 월가의 분위기는 썰렁하다. 기업들의 수익은 좋아지고 있고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여러 장밋빛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중량급 악재들이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의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하락 중이고 유가는 급등하고 있으며 이는 외국 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월가를 감도는 위기감의 중심은 뮤추얼펀드 업계의 부정 및 불법거래 스캔들과 이를 향해 칼을 빼어든 뉴욕주 검찰간의 대립일 것이다.
스캔들에 휩싸인 펀드에서 일반 고객뿐 아니라 기관투자가들은 연일 자금을 빼내가고 있으며 펀드의 최고 경영자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있다.
이번에 뉴욕주 검찰이 밝혀낸 뮤추얼 펀드업계의 스캔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 마켓 타이밍(Market Timing)이란 투자 기법을 특정 투자가들에게 허용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마켓 타이밍이란 투자기법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이는 기존의 많은 일반 투자자들이나 기관들이 행해왔던 기법으로서 장세가 활황이라고 생각될 때 시장에 올라타고, 불황이라 예측될 때는 장에서 비켜서 있거나 채권으로 갈아타며 주식 장세의 향방에 초단기적으로 배팅을 하는 상당히 보편화된 투자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이 문제가 된 이유는 상대가 뮤추얼 펀드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뮤추얼 펀드에서는 이러한 마켓 타이밍이 허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펀드들은 투자자들이 180일 이내에 펀드를 팔 경우 높은 수수료(Redemption Fee)를 부과하며 또한 단기매매를 자주 하는 투자자들을 아예 거부할 수 있는 권한(Right to Redeem)을 가지고 있다. 매매에 소요되는 수수료가 펀드의 다른 일반 주주들의 장기 수익률을 갉아먹기(Dilution) 때문이다.
문제가 된 단기매매는 주로 해외 주식에 투자한 펀드들을 대상으로 각국 증시의 시차를 이용한 투자기법이다. 미국 뮤추얼 펀드의 거래가격(NAV)은 하루에 한 번, 미 동부 시간으로 오후 4시에 결정된다. 이때는 유럽의 경우 이미 그 날의 장이 마감된지 수 시간이 흐른 뒤이며 아시아는 장이 아직 열리지 않았을 시기이다. 미 증시의 움직임이 다른 시장의 향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를 이용하여 투자자는 단기간에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Stale Price Arbitrage).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뮤추얼펀드 업계의 절반 이상이 이러한 단기매매를 헤지펀드를 비롯한 특정한 투자자들에게 뒷돈을 받고 허용해 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이 연장매매거래(Late Trade)다. 미국의 뮤추얼 펀드는 하루에 한 번 가격이 결정된다. 따라서 일반 투자자들의 경우 장중에 매매 신청을 하였어도 자신의 매매가격을 즉시 알지 못하며 그날의 가격이 결정되는 오후 4시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장이 마감한 뒤 매매신청을 하였을 경우 그 다음날의 마감시간까지 기다려서 매매가 이루어진다. 다수의 펀드사들이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고 특정 투자가들에게 시간외 거래를 허용한 사실을 뉴욕검찰이 밝혀낸 것이다. 즉, 특정 투자자들은 장이 마감되고 가격이 결정된 후 매매신청을 하였어도 그날의 가격에 매매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특정인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매우 불공정한 행위라는 측면에서 엄연히 불법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에릭 지체위츠에 의하면 해외 주식 뮤추얼 펀드의 투자자들의 경우, 이번에 밝혀진 불공정 거래에 의해서 한 해에 투자액의 1.15% 이상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불공정 행위에 대한 수사가 어느 선까지 진행될지 그리고 가까스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7조달러 규모의 뮤추얼펀드 업계가 미국 국민들의 가장 보편적인 재테크 수단임을 감안할 때 이번의 스캔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게임의 법칙’, 즉 투자자 보호라는 경제 논리를 앞세운 뮤추얼 펀드 업계와 정부간 ‘빅딜’의 가능성이나 그 비슷한 언급조차도 이 곳 월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검찰, 증권감독원, 연방은행, 그리고 업계와 투자자들 모두가 이러한 불공정 행위의 영원한 추방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선자금 수사 문제로 한국이 시끄럽다. 수사로 인해 국내 기업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경제도 위축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재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은데 대해 반성과 각성을 해야 한다. 검찰도 이번만큼은 과시성이나 눈치보는 수사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수사를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삼영 미국롱아일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