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좋아해

      2008.06.18 18:44   수정 : 2014.11.07 01:31기사원문


하루 아침에 연락을 뚝 끊어버린 남자친구 탓에 속앓이를 한 적이 있다. ‘헤어지자, 말자’는 이야기 터럭 조차 없었다. 급기야 황당함과 분노가 겹쳐 이성을 잃고 말았다. 딸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엄마는 무척 놀랐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허브차를 앞에 두고 두 모녀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얄궂지만 진짜 그랬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증발해 버린 애인. 그리움은 상처가 됐고 보기싫은 딱지가 돼 남았다. 그 딱지가 떨어져나간건 불과 몇년전. 지금은 희미한 흉터가 됐고 가끔씩 가려울 때가 있는 것만 빼면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고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눈을 부비고 다시봤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가 우리 엄마의 이야기라고? 할인 코너에서 발견한 원피스를 입어보겠다며 아무데서나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밥상 머리에서 방귀를 붕붕 뀌다 식구들의 면박을 받는 ‘아줌마’에게도 그런 사연이 있단 말야?

촌스러움의 정도만 달랐지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애잔한 사랑을 공통분모로 두고 그 때 그 시절의 추억거리를 분자로 올렸다.

이 작품의 백미는 단연 넘버다. 1970∼80년대 히트 가요를 추려 선보이는데 이 노래들이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진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형식을 빌어 ‘후딱’ 만든 작품이 아니란 이야기다. 뻔하고 늘어질 수도 있는 줄거리인데 친숙한 멜로디가 버무려지니 지겹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달고나’나 ‘젊음의 행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겠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할 것들은 유명 브로드웨이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다. 야구대회가 열리는 장면에서 무대 뒤 편에 대형 거울을 경사지게 놓아두는데 이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본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은 장치다.
또 등장인물들이 통행금지 시간에 걸려 감옥에 갇혀 있는 장면은 ‘헤어스프레이’나 ‘시카고’의 한자락을 보는 듯하다.

‘조다쉬’ ‘케리브룩’ 등 시대를 풍미했던 브랜드들이 ‘웃음 도구’로 변신한 것도 묘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한껏 멋을 낸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배꼽을 잡으면서도 그 시절의 엄마를 한번 만나보고 싶은 것처럼.

애잔한 추억을 더듬어가는 이 작품은 지난 13일부터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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