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비친 ‘우리’의 모습..최성철의 ‘파리스의 사과’展
▲ 최성철의 ‘100번의 유혹-파리스의 사과’ |
정답은 성서에 나오는 ‘아담의 사과’, 고대 도시국가 트로이의 왕자 ‘패리스의 사과’, 스위스의 ‘빌헬름 텔의 사과’ 그리고 과학자 ‘뉴턴의 사과’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패리스의 사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과로 유혹을 상징한다. 신들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신이 파티장에 황금사과 한 개를 던져놓고 가자 다른 신들은 황금의 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인다. 제우스로부터 선택권을 얻은 파리스는 권력이나 지혜를 주겠다는 신을 선택하는 대신에 미인계를 쓴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넘겨주고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패리스는 그리스의 젊은 영웅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헬렌을 취함으로써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트로이 멸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사과 하나 때문에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된 것이다.트로이를 멸망에 이르게 한 이 유혹의 사과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린다. ‘색채 조각’으로 유명한 중견 조각가 최성철(46)이 오는 1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내 롯데갤러리(02-726-4428)에서 개최되는 ‘파리스의 사과展’이 그것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다홍색 등 4가지 색으로 칠해진 사과 100개로 구성된 작품 ‘100번의 유혹’이 관람객을 유혹한다. 가로 240㎝, 세로 200㎝, 폭 20㎝로 이루어진 전시 공간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색 사과에 관람객의 얼굴이 비치면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는 사과 90개는 반구(半球) 두 개를 용접으로 붙인 다음에 그라인더로 갈아 광을 내는 작업을 거쳐 손으로 직접 제작하고 나머지 10개는 주물로 제작해 관람객들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배치하고 있다. 사과 한 개를 제작하는데 하루씩, 완성하는데 100일이 걸린 작품이다.
원래 사과는 건강, 사랑, 유혹, 배신의 의미가 있다.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감추기 위해 사과의 윗부분에 색을 칠하고 아랫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이 거울 효과를 내도록 함으로써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지난 96년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유학을 시작한 작가 최성철은 처음엔 카라라 채석장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그 다음엔 미켈란 젤로를 비롯한 서구 대리석 조각의 정교함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나름의 해결책은 서구 조각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물질을 지우고 덧칠해 다른 것으로 은폐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부터 그는 조각 작품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함으로써 형상을 표현하기보다는 지우기, 삭제하기, 감추기에 열중했다. 그러나 이번에 선보인 240㎝ 크기의 첼로 3점, 높이 90㎝ 사과 2개 반으로 구성된 ‘유혹’ 등 신작은 색을 반쯤 채우고 반쯤은 비워 한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는 “처음엔 감추기 위해 색을 칠했는데 이제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색을 꽉 채우기보다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처럼 비워둠으로써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면서도 색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작품을 만들었습니다”고 말한다.
한편 아홉번째 개인전을 갖는 조각가 최성철. 그는 국내 무대 보다는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 올 겨울에는 독일로 건너가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