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곽태선 세이에셋자산운용 대표
2009.02.16 19:04
수정 : 2014.11.07 11:03기사원문
서핑을 진짜 잘 하는 사람들은 큰 파도를 잡아타고 그 위에 몸을 맡긴다. 자잘한 파도에 신경을 쏟다가는 정작 큰 흐름을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에셋자산운용(이하 세이에셋) 곽태선 대표가 초기부터 펀더멘털 분석에 따른 가치투자를 고집하는 건 바로 큰 파도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다. 수백, 수천만명의 시장참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주식시장에서 사소한 변동과 모멘텀을 다 잡아내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정작 가치파악은 힘들 것이란 믿음은 여전하다.
‘세이고배당펀드’, ‘세이가치형펀드’.
개인투자자들이 접할 수 있는 세이에셋의 대표 펀드들이다. 당시 생소했던 가치투자 전략을 내세운데다 장기 성과가 입증되면서 최근 몇 년새 인기를 얻었던 배당·가치주펀드들 틈에서 당당히 원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세이에셋은 일반투자자보다는 기관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운용사다. 수탁고도 지난달 말 기준으로 공모는 전체의 8%에 못미치는 2663억원에 불과하지만 일임펀드를 합한 기관쪽 수탁고는 3조2397억원에 달한다.
곽 대표는 세이에셋의 전신인 에셋코리아의 창업파트너로 출발점부터 같이하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보자면 몇 안 되는 오래된 인물.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곽 대표와 세이에셋을 네개의 대표 키워드로 풀어봤다.
■키워드1. 펀더멘털 리서치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곽 대표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1988년 베이링증권이 서울에 사무소를 내면서다. 변호사에서 애널리스트로의 변신은 좋은 기회였지만 셀사이드(sell-side)보다는 실제 투자 결정을 하고 운용이 이뤄지는 바이사이드(buy-side)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1992년 창업 파트너로 참여한 것이 부티크 투자자문사인 에셋코리아다.
당시 운용업계는 지금과 달랐다. 경제나 산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도 없었고 외국 투자가들을 제외하고는 기업 탐방도 없었다.
에셋코리아 창업 멤버였던 곽 대표를 비롯해 정진호 현 푸르덴셜투자증권 사장과 임춘수 삼성증권 전무,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 등은 이런 시장에 펀더멘털 리서치를 들여왔다. 상장회사 공장을 직접 둘러보는 등 기업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업 탐방은 지금까지도 투자결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키워드2. 가치투자>모멘텀투자
‘주가 단말기를 보는 시간을 최소화해라.’ 단기 주가 모멘텀이 아닌 내재 가치에 따른 투자를 하기 위한 세이에셋의 기본 철학이다.
전 세계 모든 투자자들이 분산, 장기 투자가 정답인 줄 알면서도 막상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곽 대표는 “운용의 기본 원칙을 정했다 하더라도 성과가 나쁠 때는 흔들리기 쉽다”며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내재가치가 싼 기업들이 상승세를 탈 것으로 믿고 있다”고 확언했다.
운용사들 역시 원칙을 지키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세이에셋 내에서도 주가 상승기에는 모멘텀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구성원들도 있었다. 뜻을 같이 하지 못했던 이들은 세이에셋을 떠나면서 다른 운용사와 달리 시장이 달아올랐던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에 고생을 좀 했다. 무려 8명의 직원들이 자리를 비웠던 것.
그는 “이제 조직 차원에서 거의 안정을 되찾은 만큼 다시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라며 “올해 말까지 수탁고 5조원(일임분 포함), 3∼4년 내에 10조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키워드3. ‘주식+채권’이면 충분
금융투자협회 통계사이트에서 세이에셋의 투자자산을 검색해보면 주식과 채권 단 두가지가 전부다. 3∼5년 이상의 장기투자라면 주식과 채권의 비중만 잘 조정해도 고객들의 투자 원금을 대부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예를 들어 AA등급 채권에 60%를, 주식에 40%를 5년간 투자한다면 주식 부분을 다 까먹어도 채권 수익으로 원금을 보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는 “아무리 우량한 기업이라도 투자금이 실적으로 연결되기까지는 3∼5년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며 “앞으로도 주식과 채권내 비중을 조정하는 장기투자로 투자자들을 설득, 유도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세이에셋은 최근 장기 자산배분 전략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개인들은 물론 대학기금이나 사단법인 등의 자금이 있다면 운용목표에 따라 자산 배분 비중만을 조절해 원금은 손실되지 않도록 하는 투자 솔루션을 만들 계획이다.
■키워드4. 원칙과 리밸런싱
곽 대표는 원칙론자다. 시황이 어떻든 자산배분 원칙과 리밸런싱을 강조한다.
자산 배분 원칙이 주식과 채권 각각 50대 50이라고 치자. 1년 뒤 주가가 상승해 자산비중이 70대 30이 됐다면 주식 비중을 줄이는 것이 맞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 비중을 더 늘린다. 리밸런싱의 실패다. 이유는 원칙이 아니라 ‘전망’에 따른 투자를 하기 때문.
연기금과 각종 재단의 기금 운용 위원으로 있으면서 ‘원론적’인 조언을 했지만 잘 지켜지진 않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곽 대표는 “코스피 지수 2000에서는 사들이면서 1200선에서는 막상 투자를 머뭇거린다”며 “기금들이 원칙과 철학을 갖고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hug@fnnews.com 안상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