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前 美대통령
2012.01.29 17:52
수정 : 2012.01.29 17:52기사원문
"나의 영어 이름은 조지(George)고 내 부인의 이름은 로라(Laura)인데 왜 안 된다는 건가." 필자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접견을 가로막은 경호 책임자에게 한 말이다. 완고하게 난색을 표하던 경호 책임자는 내 말을 듣고나서 "참 재미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그게 계기가 되어 부시 전 대통령을 만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일이다. 물론 내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부시가 필자가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고 있던 나인브릿지제주를 방문하면서 그 만남은 성사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2009년 8월 1일 부시가 우리 골프장에 전격 방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으로 '2009 제주 하계포럼' 특별 강연을 마치고 나서다. 그것도 물색 끝에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우리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하기 위해서였다. 부시의 방문이 결정나고 나서 골프장에 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했다. 전직이긴 하지만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지도자인 만큼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신원조회부터 코스 안전까지 부시 측 경호원들과 청와대 경호원들이 동원돼 꼼꼼히 체크를 했다.
그날 라운드는 조석래 당시 전경련 회장을 비롯해 회장단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등이 참여했다. 라운드는 전·후반을 나누어 동반자를 서로 바꾸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시와의 라운드 기회를 고루 주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라운드에 동참하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골프장 경영 최고책임자로서 손님을 환대해야 하는 본분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열렬 환영 의미를 담은 화환을 준비해 경호 책임자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랬더니 그 경호 책임자로부터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경호 문제로 클럽하우스가 아닌 컨트리클럽에서 부시를 맞기로 했는데도 말이다. 수차례에 걸쳐 그를 설득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나와 아내의 영어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약발이 먹힐 줄이야. 내 말을 들은 그가 "가서 보자"며 반 승낙을 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영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부시를 만나기 위해 급조된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 나인브릿지 운영 컨설턴트였던 데이비드 스미스(미국)의 "영어 이름을 가져보라"는 권유에 의해서였다. 마땅한 이름이 없다고 하자 그는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의 이름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돼 그 이름으로 해외서 사용할 명함까지 만들었다. 부시가 퇴임하고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데이비드에게 이름을 오바마로 바꿔야겠다고 했더니 박장대소를 했다.
부시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연습장으로 동행하면서 내 영어 이름에 얽힌 사연을 얘기했더니 그는 "참 흥미있다"며 환하게 웃는 것으로 화답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나온 부시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좋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물론 캐디들도 함께 찍었으면 한다고 했더니 역시 "오케이"였다.
부시는 자타가 인정하는 골프 마니아다. 재임 중에는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잠시 골프채를 놓기도 했으나 백악관에서 나온 뒤로는 예전처럼 골프를 즐긴다고 했다. 당시 라운드는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선물한 엘로드 클럽을 사용했다.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는 동반자들에게 나를 자신과 영어 이름이 같다고 소개했다. 캐디가 전한 말에 따르면 마치 옆집 아저씨와 다름없을 정도로 소탈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클럽이 손에 익지 않아 전반에는 다소 스코어가 좋지 않았지만 후반에 샷감을 찾으면서 90대 초반 스코어로 라운드를 마쳤다.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라운드 소감을 묻자 "코스가 좋아 즐거웠다"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코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시가 한국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뜻밖의 연락을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시가 나에게 감사의 뜻이 담긴 친필 편지와 퍼터를 남겼다는 전갈이었다. 그가 나인브릿지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친근감이 결코 가식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부시는 이후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양용은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 고향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말해 제주에서의 ?은 체류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부시의 마음속에 나인브릿지 아홉번째 다리인 '마음의 다리'가 자리 잡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다.
■ 김운용은 나인브릿지 대표이사를 지내고 호서대학교에서 명예체육학박사를 받은 뒤 현재 제주 한라대학교 석좌교수와 세계 100대코스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