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과의사의 경제 처방전/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파생상품시장본부장
2013.05.01 16:32
수정 : 2014.11.06 16:12기사원문
영화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인 18세기 프랑스. 상업과 소규모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식량과 땔감 부족으로 빈민굴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나가야 했다. 반면 절대권력과 부를 거머쥔 왕족과 소수 귀족은 사치와 향락 속에 서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었다.
도시 빈민들의 암울한 분위기로 혁명 전야와 같은 비장함이 감돌던 1766년 베르사유궁의 왕실 의사인 프랑수아 케네는 자기 전공과 무관한 '경제표'란 글을 발표했다. 귀족 작위까지 받은 왕실 의사가, 그것도 50대 중반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무슨 이유로 경제학 연구에 뛰어든 것일까.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로 추앙받던 케네는 사람의 병보다 경제.사회의 병을 고치는 일이 더 절박하다고 생각해 이에 대한 처방을 쓴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중농주의'라 불렀다. 그는 부의 원천이 농업에 있기 때문에 빈곤문제를 농업 진흥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중농주의는 이내 상공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 사조에 의해 묻혔지만 그가 쓴 '경제표'라는 독창적인 분석방법은 경제학의 태동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케네는 '경제표'에서 부가 어떻게 생산·분배·소비되는지를 도표로 설명했다.
생산자인 농민, 지주인 사제와 귀족, 비생산자인 상공업자로 구성된 사회는 생산자로부터 지대와 임금의 형태로 분배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계층 간 생산.분배.소비되는 과정을 통해 부의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진다. 케네 자신이 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혈액이 인체기관을 유기적으로 순환하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처럼 경제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결국 이런 접근방법은 후대에 재생산구조를 찾던 카를 마르크스나 산업 간의 연관관계를 연구한 레온티예프로 이어졌고 국민총생산(GNP) 분석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또 케네는 애덤 스미스에게 영향을 주어 경제학이 태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무렵 영국의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는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케네를 만났다. 케네의 열정과 접근방법에 큰 감명을 받은 스미스는 그때부터 경제 문제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1776년 '국가 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고찰'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국부론'을 발간하게 되었다.
또 하나 특이사항은 케네가 '유럽의 공자'라 불릴 정도로 동양과 유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유교 교육과 공개경쟁 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동양의 과거제를 유럽의 귀족제보다 매력적이라고 봐 이를 소개하는 '중국의 전제군주주의'란 책을 썼다. 또 유교사회가 농업을 중시하고 단일 토지 세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복잡한 세제를 갖고 있는 유럽에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했다. 동양의 농본주의 사고가 유럽의 중농학파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노의사, 케네의 열정이 '경제표'를 만들었다. 의학도가 작성한 경제 처방전이 경제학을 관념론보다는 분석적인 경제과학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사상가 빅토르 미라보가 '경제표'를 문자, 화폐와 더불어 세상을 바꾼 3대 발명품이라고 극찬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