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이 존망을 가른다/이재훈 논설위원
2013.05.13 16:25
수정 : 2013.05.13 16:25기사원문
위기는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닥친다. 오늘날 모든 기업은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최대의 유가공업체인 남양유업이 '갑의 횡포'와 '을의 반격'에 얽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문제는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위기 관리를 잘 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심지어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이기도 하지만, 잘못하는 기업은 이내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곤 한다.
위기 대응을 잘못해 추락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미쓰비시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2002년 요코하마 도로를 달리던 미쓰비시 트럭의 바퀴가 빠져 길을 걷던 가족을 덮쳤다. 29세 엄마가 사망하고 두 아들이 다쳤다. 회사 측은 자동차 결함을 알고도 시종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못 견딘 직원의 제보로 클러치 오작동 사실이 만천하게 드러났다. 그 결과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줄줄이 구속됐다.
미쓰비시는 위기에 은폐와 축소, 변명으로 일관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현지 자동차공장에서의 성희롱 사건, 2000년 자동차 리콜 정보의 조직적 은폐 등 잇따라 발생한 불상사에 대해서도 미봉책으로 대응했다. 결국 미쓰비시는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다. 불상사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신속하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진솔한 사과, 현실성있는 후속조치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미쓰비시 사건의 교훈이다.
91년 사회를 뒤흔들었던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회사 측이 초동 대응을 소홀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케이스다. 회사 측이 무단 방류했다는 오해를 사면서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대구시에 200억원을 기부하는 등 큰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사태가 벌어지면 소비자들은 기업의 실제 잘잘못보다는 대응방식을 보고 기업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89년 '공업용 우지 라면' 파동을 겪은 삼양식품의 경우가 그렇다. 훗날 공업용 우지가 인체에 아무 해도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지만 회사는 끝내 잃은 시장을 되찾지 못했다. 잘잘못을 가리는 데만 열중해 이미지 관리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경영학계가 위기관리의 롤모델로 제시하는 기업이 존슨앤존슨이다. 82년 미국 시카고의 어느 정신병자가 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주입해 7명이 사망했다. 제임스 버크 회장은 즉각 사과하고 판매를 중단하는 한편 미국 전역에 깔린 타이레놀 전량을 수거했다. 범인이 잡히고도 반년이 지나 캡슐을 쉽게 뜯을 수 없는 새로운 포장법을 개발하고서야 타이레놀 판매를 재개했다. 그 덕에 타이레놀은 소비자 신뢰를 얻어 시장점유율 1위에 복귀했다.
남양유업은 지난 9일 대표이사가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리점 지원과 반송시스템 도입 등 후속조치도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 대리점주들은 "사과에 진정성이 없고 후속 대책도 불명확하다"며 반발하고 있고 각계의 불매운동은 더욱 확산될 움직임이다. 사태를 진정시키기에는 남양유업의 대응이 너무 엉성하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지난 3일 인터넷에 남양유업 전 영업사원의 '막말 통화'가 유포되자 남양유업은 다음날 홈페이지에 간단한 사과문을 게재했을 뿐이다.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그제서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피해 당사자보다 국민에게 먼저 사과하는 수순 착오를 범했고 '밀어내기'영업에 대해서는 "최근 조사를 해보고서 알게 됐다"며 실태 규명을 꺼리는 느낌을 줬다. 오너인 홍원식 회장이 직접 사과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래서는 성난 소비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창사 이래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얼마 전 세계경영연구원이 제시한 '위기관리 10계명' 중 제1계명이 '위기는 사회가 당신 회사를 심판하는 재판의 과정'이며 제2계명이 '처음 24시간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신속하고 솔직하게 소비자들과 소통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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