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승한 미국 국립보건원 박사

      2013.06.24 03:59   수정 : 2013.06.24 03:59기사원문

최근 파이낸셜뉴스가 개최한 '제5회 서울국제신약포럼'에서 제약산업 발전에 대한 여러가지 제언이 나왔다. 이날 포럼 강연자로 참석했던 유승한 미국 국립보건원(NIH) 박사(사진), 미셸 리우치 파스퇴르 연구소장, 카를로 인서티 젠자임그룹 수석부회장에게 국내 제약산업이 나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우리나라가 2020년 제7대 제약강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선 제약 선진국을 따라가기보다 블루오션을 찾아 한국형 연구개발(R&D)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유승한 박사는 지난 12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약 선진국이 뛰어들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 박사는 현재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이 옮겨가는 혼동의 시기를 맞으면서 우리나라가 새롭게 제약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980~1990년대 제약 선진국들이 앞다퉈 표적항암제를 개발했으나 200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이 표적항암제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종양 중 한 타깃을 잡고 약을 개발했으나 이 약을 먹고 호전되는 사람이 10명 중 2~3명꼴로 그 효과가 매우 부진해 실질적으로 표적항암제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약시장은 거대한 혼동에 빠진 상태다.


"우리 몸에는 2만~2만5000개에 달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키는 것이 암이다. 무수히 많은 종양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 종양 중 하나만 목표로 잡고 약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이 표적항암제가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약 한 개를 갖고 1조원의 돈을 버는 식이 아니라 여러 약을 개발해 한 종류당 2000억~3000억원의 이익을 모아 1조원을 만들어야 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여러 약을 개발하려면 그만큼 연구비도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유 박사는 "제약업계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올바른 방향이고 도덕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환자에게 맞지 않는 약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개개인의 증상에 맞는 약을 지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 박사는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제약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제약 선진국을 쫓아가는 후발주자로서 역할만 했으나 이제는 기존의 행보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화학연구원이라든지 생명공학연구소, 학계의 역량을 감안해 어떻게 전략을 짜고 연구 범위를 좁혀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글로벌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또 "기업들이 대규모의 매출로 빠른 투자 환수를 기대하는 신약개발만 찾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소규모의 매출을 내면서 실행 가능한 블루오션을 찾는 것이 실질적"이라고 강조했다. 즉 누군가가 간과한 분야에서 적당한 정도의 매출이 기대되는 신약 개발을 일단 시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제품 중 '블록버스터급'이 없다는 지적에도 "어차피 앞으로는 블록버스터가 나오기 힘든 시대"라며 "꼭 1조원의 매출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유 박사는 정부가 제시한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 비전에 대해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의 전략으론 안된다"고 일축했다. 기초과학, 개발, 임상시험 등 모든 단계가 골고루 발전해야 하고 또 이것들 간에 유기적인 연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핵심"이라며 "흩어지면 죽는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와 연구소, 제약사들끼리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 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한국 제약시장은 인재도 많고 역량도 뛰어나지만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신약개발의 비전을 제시하고 프레임을 정해주면 연구기관이 연구에 돌입하고, 민간기업이 각자의 이익창출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끝이 성공이든 실패든 한 번의 프로세스를 경험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또 실패할 경우 그 원인을 분명히 규명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유 박사는 조언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유 박사는 강조했다. 그는 "학계, 연구소, 제약사가 협력해 연구개발을 해나갈 때 발생할 수 있는 '구멍'을 공공기관이 잘 메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서포트'의 개념을 넘어 프로세스를 완성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역설했다.

유 박사는 "결국은 모험적이고 실험적이지만 한 번은 걸어볼 만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에서 미국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며 "전략만 잘 짜면 우리나라에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ys8584@fnnews.com 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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