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北 핵 포기 전엔 경제원조 말아야”

      2014.03.31 17:55   수정 : 2014.10.29 00:35기사원문



한반도는 오늘 새로운 역사의 기로에 서있다. 북한 내부 상황은 급변하고 있고 우리도 미래지향적 통일 방향을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에 섰다. 'First-Class 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는 (사)한반도미래포럼과 공동으로 오는 8일 시작하는 '한반도미래아카데미 통일리더십 AMP'에 앞서 강사진들의 인터뷰를 게재한다. 한반도 및 동북아 관계 전문가들이 보는 통일을 둘러싼 주변 환경, 남북한의 현실, 앞으로의 전략 등에 대해 7회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주>
박근혜 대통령은 연초 '통일 대박론'을 제시하면서 본격적인 통일 담론에 불을 지폈다.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공대 연설에서는 북한과의 지속적인 교류협력 확대와 남북한 간의 동질성 회복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비핵화를 절대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명박정부 때보다 한층 유연한 대북정책을 예고했다. 남북 관계가 서서히 해빙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단순히 상황 변화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4월에 범정부적 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는 것도 통일담론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다. MB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내고, 퇴임 이후에는 사단법인 '한반도 미래포럼'을 설립해 한반도통일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천영우 이사장을 3월 17일 만나 현 정부의 통일정책과 북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진단을 들어봤다.

―장성택 처형 이슈가 아직도 많은 의문점을 주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통치 철학이나 북한 내 권력 장악도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현재 북한 내에서 모든 최종적 결정은 김 위원장이 한다고 생각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조력자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의 1인 전제주의 체제하에서는 권력을 분립하려고 하는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거다. 김정은의 권력을 나눠 가지려는 사람은 권력에 도전하는 걸로 의심받아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김정은은 권력욕도 대단하고, 권력을 이용하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김정은 정권이 신격화 노선을 버리고 좀 더 상식적인 통치 노선을 걷게 될 가능성은 있나.

▲북한 지도층 중에 해외에서 공부도 하고 북한이 어떤 상태이며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해 김정은만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의 생각이나 스타일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같지는 않을 거다. 이미 두 가지 새로운 시도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선군정치의 폐해를 인식하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북한에서 군은 무역회사, 금융회사, 대기업, 영농회사, 건설회사, 은행 등 돈이 되는 것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재벌' 이다. 그런데 최룡해라는 민간인을 군대 수장으로 임명해 군부의 물질적 기반을 박탈했다. 또 노동당 중앙군사위를 통해 군을 통제하고 있다. 북한 운영시스템을 김정일 때보다 체계화한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경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이치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핵은 그대로 가지고 가지만 초점은 경제에 맞춰져 있다.

―북한이 스스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나.

▲핵을 포기하지 않고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북한 자력으로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규모 외부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핵을 가지고 있는 한 북한의 운명을 되돌릴 만한 지원은 불가능하다. 현 정권의 노선이 김정일의 방향과는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경제회생 수단과 방법이 부재하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통일은 어떤 형태인가.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해서 통일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 어떤 합의라도 경제적 격차 때문에 결국 흡수통일이 될 텐데 북한의 정치권력층이 이를 용납하겠는가. 우리 입장에서도 흡수통일을 해야 할 이유와 필요성은 전혀 없다. 북한의 기존 체제가 무한정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 통일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체제에 대한 진실을 막을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해외 근로자도 많고, 인터넷도 들어가 있고, 휴대폰 사용자들도 증가 중이다. 남한 문화의 유입도 활발하다. 북한 주민들이 각성하게 되면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약화될 것이다. 북한 내 정치적 변고가 발생하거나 김정은 정권이 무너진 후 후속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곧바로 통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이런 혼란 상황에 빠졌을 때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을 도와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국 개입을 억제할 수는 없나.

▲1991년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는 국가관계가 아니라고 기술돼 있다. 남북관계는 국가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내부관계라고 적시돼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몇 달 동안 협의를 거쳐 만들고, 양쪽 총리가 서명한 가장 권위 있는 조약형태의 합의서다. 남북관계 국제관계 용어 중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라는 말이 있다. 한 국가가 불능에 빠질 경우 국제사회가 대신 돌봐줘야 한다는 권리다. 보스니아 나토 공습, 소말리아, 르완다 등이 이 경우다. 하물며 제3국도 도와주도록 되어 있는데 북한은 심지어 남한정부에 있어서 공식적으로는 '외국'이 아닌 한 민족이다. 같은 민족의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북한 내 급변 사태 발생 시 주변국들의 개입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비방 중상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나.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대칭적 정보, 즉 우리만 가진 정보는 북측 입장에는 비방 중상으로 인식된다. 북한을 찬양하는 것 외의 모든 정보는 북한에서 비방 중상이다. 북측은 식량, 현금, 비료를 주는 것보다 대북방송 중단하고, 애기봉 점등(서부전선 최전방 고지의 성탄절 점등행사)을 안하고, 북한 체제에 대해 비우호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을 더 원한다. 최근의 이산가족 상봉이 키리졸브 훈련 시기에 이뤄졌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쌀.비료 때문에 이산가족과 상봉한 게 아니라 비방 중상 중단에 남북이 합의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수 있었다.

―남북 관계가 박근혜정부 들어 많이 달라졌다. MB정부 때와 달라진 점이 있어서인가.

▲MB정부 때 북한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일을 한 것이 주효했다. 핵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지원을 하면 체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 MB정부 전 대북지원 누적액이 75억달러(약 8조원) 정도였는데, 이것이 끊기면서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시장경제가 도입됐다. 한국이 쌀.비료를 주지 않자 북한의 배급 체제가 붕괴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북한 물가가 100배나 뛴 것이다. 대규모 대북지원 중단의 성과다. 유일한 외화벌이는 석탄과 광석을 중국에 팔아서 버는 것이 전부였다. MB정부 때 지원 중단 상태를 경험했던 북한이 박근혜정부 들어 앞으로 5년을 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먼저 숙이고 들어온 것이다. 제일 중요한 대북 목표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북한도 돈을 벌고 싶다면 개혁개방하고 시장주의로 눈을 돌리게 해야 한다. 핵을 포기하기 전까지 경제원조는 참아야 한다.
다만 인도적 지원, 의약품 제공, 의료봉사 등은 할 수 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박소연 기자

■약력 △62세 △부산대학교 불어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1977년 외무고시 11회 △외교정책실장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영국대사 △외교통상부 제2차관 △대통령 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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