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연 탈북자 출신 대학생 "가슴에 맺힌 통일 이야기 시에 담을 것"

      2014.09.29 17:39   수정 : 2014.09.29 17:39기사원문

'빛이 있어 꽃이 피고, 빛이 있어 새가 날고, 빛이 있어 내가 웃고 사는구나.'

지난 8월 초 첫 번째 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을 펴낸 탈북자 출신 대학생 이가연씨(가명·28·사진)는 3년 전 늦가을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이런 글귀를 적어내려갔다.

이 씨는 "처음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이른 새벽이었는 데도 거리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며 '불바다'인가 싶었다. 하지만 빛이라는 걸 알고는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그 때부터 갑자기 짧은 글들이 떠올랐고 이후 조금씩 일기처럼 시를 써 왔다"고 말했다.

황해남도 해주 출신인 이씨는 2011년 한국에 입국했다. 북에서 우연한 순간에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다시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여정이었다.


이 씨는 "북에 살 때 어머니가 늘 들꽃을 꺾어다 식탁 위에 두곤 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일인데 지금은 '그게 행복이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번 시집에 담긴 글들은 그런 감성으로 써 내려간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 대한문예신문사를 통해 등단했다. 2013년 시부문 통일부 장관상을 받은 데 이어 현재 국제 팬(PAN)클럽 탈북망명작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써 모은 글은 롯데재단의 후원 덕분에 책 한 권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시집을 낸 작가가 되면서 이 씨는 서울 문학의 집 회원이 되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선택이 불가능했고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선택하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며 "발을 뻗고 잘 수 있어서, 쌀밥을 배불리 먹고도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전했다.

이번 시집에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담지 않으려 했다. 남북 사이의 민감한 이슈 대신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사와 기쁨, 외로움 등의 감정을 편하게 터놓고 싶었다고 한다.

이씨는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뒤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느꼈다. 한국에도 분명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내 감정이 조금 위로가 됐으면 했다"며 "나는 앞으로도 밥을 주제로 시를 쓸 것이다. 다만 첫 번째 시집이 개인적인 감성을 다루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에 재학 중이다. 하지만 적성을 고려해 내년 3월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다시 입학할 계획이다.


이씨는 "정말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좋지만, 친구들은 나이도 있는데 새 길을 가는 것이 힘들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60~70대에 시를 쓰기 시작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 정도면 빠른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웃어보였다.

july20@fnnews.com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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