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③) 공천권다툼 해법 찾는 정치권

      2015.05.19 16:41   수정 : 2015.05.19 16:41기사원문
與 '오픈프라이머리' 野는 혁신기구 신설 국민 신뢰 되찾을까

"결국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지난 2008년 3월 23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4.9공천 관련 견해를 밝히며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강력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번 18대 총선의 한나라당 공천 과정을 보고 우리 정치의 현주소에 좌절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자리에 섰다"면서 "한마디로 정당정치를 뒤로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였고 과거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해서 얻은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어리석은 공천이었다"고 격노했다.

이 같은 공천갈등은 친이(친이명박)와 친박(친박근혜)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로 안내했다.
18대 총선에선 친박연대의 돌풍이 불었고, 이명박정부에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후에 나타났다. 광우병 파동과 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에서 친박의 협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야당보다 더한 비토세력이 되면서 국정 운영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친이와 친박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시계를 5년 전으로 좀 더 돌려 야당을 보자.

지난 2003년 11월 11일. 민주당을 탈당한 의원 40명과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 5명, 개혁국민정당 의원 2명 등 47명이 100년 정당을 내세우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 당시 김원기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역주의 타파를 지향한다"면서 "선거제도 등 제도 개혁을 통해 지역주의가 힘을 쓰려야 쓸 수 없는 환경을 기필코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지역주의 타파였지만 속내는 친노(친노무현)계와 옛 민주계의 결별이었다.

결국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고 이로 인해 촉발된 탄핵정국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의 원내 과반수 정당으로 우뚝 섰다. 당시 한나라당 121석과 민주노동당 10석을 얻었으며 새천년민주당은 9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했다.

이후 야당의 역사는 친노계와 옛 민주계의 갈등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당 대표가 스물아홉 번이나 바뀌었다. 그사이 친노계와 옛 민주계는 김근태(민평련)계, 김한길계, 정세균계, 노동.시민단체 등으로 더 세분화됐다. 사안별로 결합과 분열을 하면서 이합집산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당을 견제할 건강한 야당이 되지 못하면서 국민의 정치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내부 정치에 몰두하면서 건전한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친이 세력이 위축되면서 이제 친박·친이 갈등은 사라졌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내 계파 간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형국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여야 모두 갈등의 원인이 '이념'보다는 '공천'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실제 집권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최근 "정치인의 철학, 고집을 꺾는 힘이 공천권"이라며 "당 권력자나 청와대 권력자가 자기 사람 심는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에 대해서도 "공천권을 내려놓으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당론으로 확정한 상태이고 새정치민주연합도 곧 각 계파가 참여, 공천 관련 사안도 다루는 혁신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럭비공 같은 공천권이 어떻게 굴러갈지 또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지켜볼 일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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