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관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디지털 시대 맞춰 법과 현실 조화 이뤄야"

      2015.08.31 17:02   수정 : 2015.09.02 10:40기사원문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사법(司法)기관은 '사법(死法)기관'에 불과합니다."

8월 31일 한명관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56.사법연수원 15기.사진)은 "변화를 두려워하면 법조계는 발전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국내에서 형사소송법을 연구하는 유일한 단체다.

한 회장은 "검사 시절 법무부 법무심의관실과 검찰국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법리를 적용하려 애썼다"면서도 "수십년 판례를 답습하며 기존 틀에 갇히려 하는 법조인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지난 1989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기획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법무부 법무실장, 수원지검 검사장 등을 두루 거쳤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려면 법에 대한 치열한 연구는 기본이라고 한 회장은 말했다. 2년 전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그가 택한 것도 공부였다.

한 회장은 로펌의 수많은 러브콜을 마다하고 자비를 털어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프랑스 법무부 부패방지국에서 실제 수사를 참관하며 선진국의 사법시스템을 익혔다. 10년 전 프랑스 유학 후 느낀 학문에 대한 갈증도 해소했다.

지난해 법무법인 바른의 구성원 변호사로 돌아온 그는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을 맡아 반 년간 학회를 이끌어 왔다. 30여년간 몸소 겪은 검찰 실무와 학문적 이해를 형사소송법 발전에 쏟기 위해서다.

학자와 실무가 500여명이 적절히 포진된 형사소송법학회는 형사사건 관련 이슈에 맞춰 월례발표회와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이다. 현행법상 디지털 자료는 피의자가 시인할 경우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증거로 인정된다. 최근 대법원이 여러 정보가 섞인 디지털 증거를 압수수색할 경우 영장에 적힌 혐의와 관련된 자료만 다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실상을 모르는 말'이라며 '피의자가 범죄 내용을 감추려 다른 이름으로 파일을 저장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회장은 이 같은 현실과 형사소송법과의 적절한 조화를 꾀할 자리를 마련했다. 학회는 오는 11일 대검 독일형사법연구회와 함께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해 논의한다.

한 회장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공판중심주의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피고인 측의 치열한 공방을 거쳐 증거가 채택된다"며 "검사가 e메일 등 디지털 자료를 확보하되 외부 전문가로 꾸려진 '위원회'가 자료를 적절히 선별한다면 또 다른 법익침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형사소송법뿐 아니라 외국의 사법 발전에 대한 한 회장의 관심도 크다. 학회는 지난 7월 중국형사소송법연구회와 제8회 한·중 학술대회를 열어 60년간 운용된 국내 형사소송법을 외국에 알렸다. 말하자면 '법무한류'인 셈이다.

한 회장은 "1976년에야 형사소송법을 제정한 중국 측에 많은 도움을 주고 우리도 기본을 점검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사법공조 측면에서 많은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고 친목을 다졌다"고 전했다.


이어 "로펌과 학회라는 미지의 두 세계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데다 학술대회 호스트를 맡아 힘이 들었는지 7월 말 목욕탕에서 왼쪽 팔 회전근개가 늘어나는 낙상사고를 입었다. 1주일간 휴가를 얻어 온전히 힐링하는 데 보냈고, '한 달간 금주'라는 처방을 보너스로 받았다"며 웃었다.


한 회장은 "학문적 비판이 없는 결정과 제도 운영은 결국 해악으로 귀착되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이상 교수와 실무가들의 학문적 비판의 장을 확대하고 진작하는 데 힘을 쏟겠다"며 "동아시아 한.중 협력을 넘어 근대 형사법의 발원인 유럽 나폴레옹 형사법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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