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⑥) "기초의학 선택하는 의사 1%뿐.. 한국판 투유유 나오겠나"

      2015.11.10 16:49   수정 : 2015.11.10 21:42기사원문

"우리나라 R&D(연구·개발) 투자액은 매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보건의료분야에 쏟는 투자는 전체 R&D투자액 가운데 10%가 채 되지 않는다. 미국이나 영국 등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노벨의학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자문하고싶다." 김춘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최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 인력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이뤄져야할 때"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한국이 노벨상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이유로 단기실적주의 연구문화와 기초연구의학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수십년 동안 연구개발을 통해 이룬 업적을 만들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연구비 지원과 인력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에 일본과 중국이 수상한 것과 관련해선 "아쉽다"는 반응과 함께, "우리나라가 자성하는 자세를 갖고 변화를 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2015 노벨 생리의학상에는 말라리아와 기생충 연구에 큰 공적을 남긴 아일랜드, 일본, 중국 출신 연구자 3명에게 돌아갔다. 특히 중국 출신 연구자가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여성 과학자인 투유유 중국중의학연구원 명예교수는 올해 85세 여성으로, 30대 후반부터 말라리아를 연구해왔다. 지난 1971년 여름 중국 고전의서인 '주후비급방'에 기록된 '개똥쑥이 말라리아에 쓰인다'는 처방을 토대로 치료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에대해 김 위원장은 "한국보다 중국이 먼저 전통의학분야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안타깝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면서 "노벨상 수상에는 그만한 환경이 뒷받침되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 투유유 명예교수가 속한 중국중의학연구원은 중의약에 대한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은 물론, 6개 산하 병원과 14개 산하 연구소를 거느린 국가 연구기관으로 중의(中醫)와 양의(洋醫) 간의 상호 개발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중국은 거대 중의약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전략적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이번 노벨상 수상은 한 번의 뛰어난 성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면서 "결과를 검증하고 확인하는 데 4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한의약 분야를 포함한 기초의료과학 R&D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나간다면 노벨상과 거리는 한층 더 좁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노벨상 수상 결과에서 한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내 의학계에서도 노벨상에 거는 기대가 컸나.

▲올해 노벨생리의학자 수상자는 중국, 미국, 일본 총 3개국 과학자가 공동수상했다. 이번에 중국이 생리의학 분야에서 처음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한.중.일 3국 중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게 됐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우리 의학계에서 바라보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우리 의료계, 의학계 연구자들도 노벨상을 기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선 현재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중국이 수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각에선 이번 중국의 수상이 중국정부의 지속적 R&D 투자, 과학기술인력 지원, 과학기술에 대한 일관된 정책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나 역시 공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R&D 투자액은 매년 증가해 2014년 17조 6395억원에 달하지만, 보건의료분야 투자액은 전체투자액의 8.0%인 1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2013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보건의료 R&D는 전체 R&D중 7.1%를 차지했다. 미국의 보건의료 투자는 전체 R&D 투자의 22.5%였고, 영국 역시 국가 전체 R&D의 22.0%를 보건의료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터무니없이 적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분야와 인력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의학교육 시스템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의학 분야를 포함한 과학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국가를 보면 교육과 연구의 기초가 잘 갖춰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의학계는 단기간에 괄목할만한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 특히 의사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국내 임상의학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초의학에 대한 교육과 연구,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왔던 탓에, 그 이상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의과대학에서부터 기초의학에 대한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학생과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에 몰두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돈벌이가 좋은 일부 의사 직업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연구 중심의 의료 과학자에 대한 관심은 미흡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부의 보건의료 R&D 지원이 부족하다보니 연구자가 마음 놓고 소신껏 연구 사업을 진행하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R&D 예산을 대폭 늘리는 한편, 각 부처로 분산돼 있는 보건의료 연구개발 정책과 예산을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처럼 한 기구로 통합 관리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또한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공감한다. 현재와 같이 임상의사 배출을 목적으로 하는 의대교육시스템 및 의사과학자를 위한 교육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의사과학자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국가장학금을 지급하고 우선 취업 등의 배려도 검토할만 하다고 본다.

―정부 지원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적정하다고 보는가.

▲현재 의사과학자를 교육시키는 별도의 교육시스템 자체가 없다. 의사과학자 육성의 가장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보건복지부가 10개의 대학을 지정해 '연구 중심 대학 지원 사업'이 있다. 의대와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13년 4월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6개 학교만 지원을 받았고 나머지 4개 학교는 지원을 받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과 대학병원이 임상중심의 운영구조라는 것을 감안할 때, 노벨의학상을 배출할 만한 연구풍토와 문화조성이 됐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3년 전부터 미래 노벨상을 목표로 메디스타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연구과학자를 선발, 지원해오고 있다.

▲그렇다. 정부는 3년 전부터 미래 노벨상을 목표로 메디스타 프로젝트(Medistar project)를 만들어 매년 35세 이하 젊은 과학자 중 의학 5명, 생명과학 5명을 선발해 연구비로 1년에 1억원씩 3년간 지원하고 연구업적이 우수하면 3억원씩 5년간 추가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상당수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야할 것이 대학입학 전의 아이들 교육환경과 문화에 대하여도 생각해 봐야 한다. 개똥쑥에서 말라리아치료제인 아르메티신을 처음 발견한 중국 여성 약리학자 투유유의 업적은 30년이 지나야 노벨상을 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인류가 겪고 있는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해결을 시켜주는 단초를 제공했던 투유유는 영어 논문뿐만 아니라 박사 학위 조차 전혀 없었다. 인류애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교육풍토와 문화야말로 노벨의학상의 가장 기초이자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마음껏 던지고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과 투자를, 개별 가정과 우리 사회 모두 이에 필요한 사회적 문화조성을 준비해야 한다.

―정부 정책상 부처별로 보건의료 연구개발 정책이나 예산이 분산돼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정부 R&D 예산은 미래창조과학부(34.9%), 보건복지부(30.8%), 산업통상자원부(16.4%) 등으로 분산돼 있다. 전체 R&D 예산 중 보건의료분야가 차지하는 파이 자체가 작은데 이마저도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다 보니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보건의료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실질적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중복 분산투자가 발생하고 계획적이고 장기적 투자가 안 되는 것이다. 증가하는 보건의료 R&D 예산에 맞춰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예산집행 및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의학 바이오 부문에는 삼성과 같은 그룹들도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고 있다. 노벨상 육성 연구기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의 얘기도 많다.

▲노벨상 육성 연구기금은 정부 기금과 민간기금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정부기금으로는 현재와 같이 기금조성에 인색한 정책 기조 하에서는 쉽지 않다. 오히려 민간과 정부 매칭형식의 기금사업을 권할 만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와 투자에 대하여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치고, 그 성과와 과실을 민간분야가 산업화에 활용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노벨 의학상을 받는 날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이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우선 우리나라엔 중국과 같은 사례가 왜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모두 기생충 감염질환 치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기초의학 분야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초의학분야가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상의학에 비해 정부 지원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수입도 낮다보니 연구자들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핵심 연구인력도 매년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모두 의과대학으로 집중되지만 정작 의사면허 취득 후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의사들은 1%에 불과하다. 기초의학을 전공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사회적 성과가 임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초의학분야에 연구비가 지원된 지 10년이 채 안된다고 한다. 기초의학과 기초의학자들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충분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 시기를 점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연구의 역사는 노벨상 주요 수상국에 비해 짧은 편이기 때문이다. 진행 중인 연구를 검증하고 성과가 나타나기까지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유능한 연구 인력에게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주어진다면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의학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한 때는 숭고한 뜻을 가슴에 품었던 젊은 의료인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어쩔 수 없이 시류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면, 선배 의료인이자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제6대 WHO 사무총장을 역임하셨던 고(故) 이종욱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의사는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숭고한 사명의식을 지닌 채 진료와 연구에 매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인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은 감히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후배 의료인들이 이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고 진취적으로 국민건강 증진과 미래 의술 발전에 기여해주기를 바란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특별취재팀 정명진 팀장 최갑천 이설영 김미희 박세인 기자
■약력 △62세 △경희대 치의학과 △경희대 보철학 석사 △경희대 치의학 박사 △인제대 보건학 박사 △한림.경희.고려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김대중 대통령 치과 주치의 △17.18.19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당의장 보건의료 특별보좌관 △유니세프 국회 친구들 공동대표 △제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대한보건협회 부회장 △대한치과감염학회 고문 △통일의학포럼 공동대표 △한에티오피아 의원친선협회 회원 △한국환경한림원 정회원 △제19대 국회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현) △제1회 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보건 국회의원 포럼 의장(현)

■수상내역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국정감사모니터단 보건복지위원회 우수의원 △국회예산정책처 조사 분석 활용 최우수의원 △대한치과의사협회 올해의 치과인상 △국회 입법 및 정책개발지원위원회 우수의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혁신관련 국정감사 활동 우수위원상 △제3회 대한민국 나눔봉사대상 복지정책 부문 △대한민국한센대상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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