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④) 기울어진 추, 기울어진 법.. 다양성 상실한 국회
2015.11.17 18:08
수정 : 2015.11.17 22:09기사원문
1.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20여년간 수사관 생활을 하고 5년전 법무사 사무소를 연 A씨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지역에서 야당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펼쳤던 그는 예비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A씨는 사건수임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변호사들이 법무사의 업무 영역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현실에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는 "변호사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많은 국회에서 법무사의 이해가 반영된 법안은 발의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넋두리했다. 19대 국회에서 법무사 출신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신학용 의원 한명이다. 신 의원의 이름 앞에는 '국내 1호 법무사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는다.
2. 최근 한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면 19대 국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으로 발의된 법안이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의 약 4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수적 비교지만 입법활동에서 세대간 불균형을 보여주는 예다. 이같은 상황은 예산 배정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 노인 복지 예산은 8조7798억원인 반면 청년일자리 지원 예산은 1조7584억원에 그쳤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최근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불효자식방지법' 제정을 논의하는 것을 보았는데, 노인 세대 외에 청년 세대를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148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7일 현재 295명의 의원이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는 2016년 4월 13일로 예정된 20대 총선은 내년 3월 24일 후보자 등록을 시작하고 그 다음달 8일 사전투표를 실시한다. 우리 사회의 민의를 골고루 대표해야 할 새로운 일꾼을 뽑는 투표가 반년도 남지않은 시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는 '사회의 축소판'이 돼야 한다. 국회는 다양한 집단과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입법권이 행사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19대 총선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쉽다. 성비, 나이, 학력, 경력, 재산 등에서 기울기가 심하다. 특정집단만의 축소판으로 전락한 국회는 예산심의, 법안발의 등에서 국민 전체의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의 선택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사표(死票)'로 버려지는 현행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이유다.
■성비, 연령, 직업 등 기울어진 사회축소판
우리 국회는 다양성을 상실했다. 이는 19대 총선 결과를 분석한 통계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19대 국회는 늙었다. 참여연대의 조사 결과 지난 19대 총선에 당선된 국회의원 가운데 50대 이상이 211명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40~50대가 80명, 30~40대가 9명 그리고 30대 미만 의원은 없었다.
여성은 국회 내에서도 소외계층인 점이 변하지 않았다. 성별 구성을 보면 246명 지역구 국회의원 가운데 남성 의원이 227명으로 92%를 차지했다. 여성 의원은 19명(8%)에 불과했다. 여성 비례대표 28명을 합해도 전체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의 비율은 15.7%(47명)에 그쳤다.
직업별로 보면 이른바 '엘리트 기득권 층'의 구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19대 국회는 야권 통합 바람으로 시민단체 인사들의 원내 진출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기존의 법조인, 관료, 학계, 기업인, 언론인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출신대학별 편중도 마찬가지다. 최종학력을 기준으로 서울대가 62명(20.7%)으로 가장 많았고 해외 소재 대학이 42명(14.0%)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연세대(26명), 고려대(23명), 한양대(12명), 성균관대(11명), 경희대(10명) 등도 두자릿수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 동국대, 이화여대, 중앙대, 전남대, 한국외대, 서강대, 건국대에서는 5명 이상 당선됐다. 고졸 이하 당선자는 7명이었다.
국회의원의 자산은 국민들의 수준과 달랐다. 19대 총선 당선자의 재산 수준을 보면 1억원 미만이 11명,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의원이 5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30억원 이상의 자산가도 52명에 달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패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국회가 국민 전체를 대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현재 국회의원의 구성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같이 한쪽 집단에 기울어진 인적 구성으로 인해 예산심의, 법안발의 등에서 국민들의 이해가 골고루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반이 버려지는 표, 선거제도 개선 시급
국민의 다양한 이해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회의 현주소는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전문가들은 현행 선거제도를 꼽는다. 정치권 역시 이 같은 문제 진단에 공감하며 내년 20대 총선을 대비해 선거구 획정을 중심으로 선거제도 개선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여야는 비례대표 의석 수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우리나라 선거제도에서 일등이 아닌 낙선한 후보자에 던진 표는 모두 소용이 없다. 당선자가 아닌 사람을 선택한 표는 사표가 된다.
19대 총선만 하더라도 버려진 표는 총투표수의 절반에 달한다. 지역별로 보면 충남과 대전 그리고 세종에서 버려진 표가 무려 50%가 넘었다. 투표한 사람 두 명 가운데 한 명의 표가 무시되는 우리 선거제도에서 유권자의 의견을 고르게 반영하기는 어렵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거대정당에 더 유리하고 소수정당에 더 불리한 선거제도라는 점이다. 유권자의 표심을 얻은 만큼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대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42.8%의 정당투표로 총의석 중 50.7%를 차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36.45%의 정당투표를 얻고 42.3%의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소수정당은 자신들이 얻은 유권자의 표심을 의석으로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국회의원의 정수에서도 비례성이 떨어진다.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국민의 수가 과거에 비해 뒷걸음질하고 있다.
지난 1948년 제헌국회 때 국회의원은 총 200명이었다. 당시 인구가 2000만명 정도이기 때문에 국민 10만명당 1명의 대표가 있었던 셈이다. 이후 몇 차례 공직선거법 개정을 거쳐 현재는 300명의 의원 수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수가 5000만여명이다. 의원 1명당 국민 16만8000여명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회는 과거 제헌국회에 비해 인구 기준 대표성이 크게 낮아졌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소 원장은 "국회는 법을 다루는 곳인 만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을 낼 때 더 좋은 법안이 발의될 수 있다"며 "비례대표 등 현재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기울어진 국회의 대표성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ee@fnnews.com 이승환 윤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