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0% 쓰는 결합상품, 시장 구분 못한다?

      2016.03.20 17:12   수정 : 2016.03.20 17:12기사원문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연구해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해야할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과 TV, 인터넷TV(IPTV)와 이동전화 등 방송통신 상품을 결합해서 사용하는 가정이 국내 전체 가구의 80%에 육박한다고 스스로 조사결과를 내놓으면서도 결합상품 시장을 획정하지 못하면서 정부 정책은 물론 업계와 소비자들의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 서비스의 시장 획정은 KISDI의 고유 연구분야로 매년 정부는 KISDI의 경쟁상황 평가와 시장획정에 따라 각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 선정 여부와 각 시장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세운다. 그런데 KISDI가 결합상품 시장 획정을 뒤로 미루면서 결국 정부는 결합상품 시장의 특성에 맞춘 정책을 마련하기 어렵게 됐고, 전국민의 80%에 달하는 결합상품 소비자들도 시장 성격에 맞는 정책의 혜택을 미뤄야 하는 실정이다.

■관심모으던 결합상품 경쟁상황평가… KISDI '모르겠다'

KISDI는 지난 18일 지난 2014년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2015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매년 통신시장의 경쟁상황이 어떤지를 분석하는 보고서로 올해 처음으로 결합상품 시장에 대한 분석이 포함돼 정부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특히 최근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이 업계의 논쟁거리로 부상하면서 KISDI의 결합상품 경쟁상황평가가 M&A 심사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M&A를 반대하는 경쟁회사들이 결합상품 시장의 독점화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서를 통해 KISDI는 결합상품을 별도의 시장으로 획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단품시장의 지배력이 결합상품이나 다른 단품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10가구 중 8가구가 결합상품 쓰는데… 시장획정 조차 못해

시장획정은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군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으로 시장획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쟁제한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KISDI 조사에 따르면 전국 10가구 가운데 8가구 이상이 결합상품을 사용중이다. 사실상 결합상품이 우리 통신사업자들의 주력 경쟁상품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KISDI는 "시장을 획정하는데 자료거 더 필요하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KISDI가 방송통신 시장을 획정하지 않으면 사실상 법률적으로는 해당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며 "시장이 구분되지 않고 있으니, 결합상품 시장에 맞는 소비자 보호정책이나 요금, 경쟁정책 등 미래창조과학부의 주요 정책도 결합상품 맞춤형이라기 보다는 이동전화나 인터넷 등 기존 시장에 대한 정책을 빌려다 쓸 수 밖에 없어 소비자도 업계도 모두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KISDI가 결합상품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시장 획정을 못한다고 하지만, 결합상품이 처음 도입된 것이 2007년"이라며 "근 10년간의 자료를 바탕으로도 시장획정이나 지배력전이 문제를 분석하지 못하는 정책기관이 정상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신업계 아전인수식 해석내놔… 정부 부담도 '가중'

KISDI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정부와 업계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당장 통신사업자들은 KISDI의 애매한 보고서에 대해 자신의 입맛에 맞춘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CJ헬로비전 M&A를 추진하고 있는 SK텔레콤은 "결합상품 시장에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의 지배력 전이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고, KT와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 시장 1위 사업자의 지배력이 결합상품 시장에 전이되고 있다는 근거가 나왔다"고 각각 제멋대로 해석을 내놨다.

이번 보고서 때문에 정부의 부담도 커졌다.
미래부는 현재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 심사를 진행중인데, 관건은 결합상품 시장의 경쟁활성화 문제다. 이 때문에 KISDI의 결합상품 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라 정부가 심사의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측이었다.
그러나 KISDI가 애매한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정부는 경쟁상황도 모른채 깜깜이 심사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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