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임기 중엔 혐오시설 안돼" 공직자 님투·핌투가 더 문제

      2016.06.23 18:17   수정 : 2016.06.28 20:14기사원문


13년간 이어진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논란이 지역민에게 신기루만 남긴 채 허무하게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났다. 대선 공약에서 시작된 영남권의 숙원사업은 결국 백지화됐고 지역 간 첨예한 갈등과 분열, 상처만 남겼다. 영남권 신공항 논란은 돌고 돌아 원점으로 왔지만 사업 전면 백지화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인 국책사업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사태를 도리어 키웠다는 것이다.

혐오시설이 내 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안 되지만 선호시설은 유치하겠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와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은 지역주민의 이기주의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꼽힌다.
그러나 이번 신공항 건설 백지화 사태는 공직자가 자신의 임기 중 혐오시설은 설치하지 않고 선호시설은 유치하려는 님투(NIMTOO.Not In My Term Of Office)와 핌투(PIMTOO.Please In My Term Of Office)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표밭관리 차원에서 국책사업을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정치권의 개입이 결국 국익과 사회적 단합에 혼선을 초래한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정치권이 지역간 갈등 키워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영남권 신공항 논란의 시작과 끝에는 정치권이 있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이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 등 다른 님비.핌피 현상도 마찬가지다. 즉 님비.핌피로 보이는 논란 속에 님투.핌투 현상이 숨어있는 셈이다.

님투는 공직자가 자신이 재임하는 기간에 혐오시설 설치를 막고 임기를 끝내려는 업무행태를, 핌투는 반대로 공직자가 임기 중에 반드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업무행태를 각각 의미한다.

이번 신공항 건설 백지화 사태를 포함한 국책사업 갈등을 지역주민의 이기주의로만 봐서는 안 되는 것은 정치권이 사안마다 속속들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미 확정됐던 강원 삼척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겠다는 것도, 이번에 또다시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것도 모두 정치권의 공약에서 시작된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자기 지역과 관련된 국책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님비현상과 핌피현상이 인간의 자존적 본능이듯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역시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전체를 위해 무엇이 좋은 결정인지 일말의 고민이나 토론도 없이 무조건 지역의 이익만 추구하는 정치권의 행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권이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선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가상준 교수는 "선호시설이든 비선호시설이든 국가의 중요한 공공사업은 안전성, 효율성,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판단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정치적 문제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면서 "국가사업에 대해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정치인이 앞장서서 비상식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정치구조적 문제, 정치권이 스스로 깨야"

국책사업을 두고 반복되는 소모적 논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스스로 구조적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원섭 교수는 "정치인들도 (국책사업 유치 논쟁이)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안 좋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절대로 나서서 반대하지는 못한다"면서 "개인의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지역구의 이익을 챙겨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적어도 국회 차원에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의견이다.

실제 이번 영남권 신공항 논란을 살펴보더라도 정당 내부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내면서 이 사안을 국가 정책의 하나로 토론하거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없었다. 자기 지역에 유리한 주장을 펼치고 경쟁 지역의 약점을 공격하는 등 지역 이해관계를 자극하면서 갈등을 키워갈 뿐이었다.

무분별한 정치권의 개발공약도 문제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에 대한 정치인의 지키지 못할 약속은 실망과 불신을 낳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공약에 대한 타당성 검토와 재정 추계를 꼼꼼히 하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지역 간 분열을 일으킨 수많은 국책사업이 대선 공약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약이 남발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책사업이 공약화되는 것 자체가 후진적 정치문화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권의 말 한마디에 휘둘려 표류하기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매니페스토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중앙정부가 국책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론을 수렴하고 토론하는 주체로 국회가 나서고 사회적 합의를 이룩하는 게 결국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표를 얻겠다는 조급함으로 내놓은 공약들이 국가 미래를 위한 공공사업을 오히려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를 예로 들며 "일각에서는 대국민 토론 등으로 국책사업을 결정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하지만 우리는 6개월 연구하고 (입지 선정에) 10년 걸리는 반면 프랑스는 10년간 토론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6개월 걸린다"면서 효율성 측면에서도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경민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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