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열집 중 한집 '빈집'.. 집값은 25년 전의 '⅓토막'
2016.07.03 18:04
수정 : 2016.07.03 21:27기사원문
【 도쿄(일본)=이정은 기자】 일본의 부동산 정보사이트인 스모(SUUMO)에서 이 지역을 검색해보자 놀랍게도 노후 공가들의 월세 물건이 올라와 있었다. 주로 40~50년 전에 지은 집들로, 면적이 21㎡인 경우 월세가 4만엔(약 45만원), 17㎡ 3만엔(약 33만원), 좀 더 작은 12㎡는 2만3000엔(약 25만원)에 불과했다. 도쿄에서 10여년간 거주한 통역사는 "집 상태로 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저렴해야 할 것 같지만 그나마 도쿄 23구 안에 위치해 있어 이 정도"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공가가 골칫덩이로 떠올랐다. 부동산 활황기에 과잉공급된 주택이 이젠 공가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늘기 시작한 빈집은 이제 도쿄 등 대도시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다.
도쿄 내 빈집 수는 지난 2013년 기준 81만7000가구로, 전체 주택의 11.1%를 차지한다. 한국도 이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이 늘고 있어 일본처럼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은 고령화와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장기 저성장 상황 등을 부동산 버블 붕괴의 주요 요인으로 꼽고 있었다. 특히 일본은 지난 1990년대 고령사회, 2000년대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고령화 효과가 이미 주택시장에 반영됐다. 현재 일본의 집값은 버블기에 비해 3분의 1로 떨어졌다.
니혼대학 시미즈 치히로 교수는 "20~64세의 경제활동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인 노년부양비율은 현재 38%로 2040년에는 70%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며 "고령인구가 늘고, 부동산의 핵심 수요층인 젊은층이 줄어들게 되면 수급 불균형이 발생,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일본은행(BOJ)이 부동산에 대한 대출을 막아버린데다 금융기관도 불량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장기침체가 20년간 이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아베노믹스 등에 힘입어 회복세로 돌아선 것이 최근 몇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대도시 핵심 역세권을 중심으로 부동산경기가 되살아나는 기미도 보였다. 일본의 부동산정보업체 리맥스 재팬에 따르면 도쿄 23구의 중고아파트(70㎡) 평균 가격은 3년 연속 상승했으며 지난해는 전년 대비 13% 오른 4748만엔(약 5억3424만원)을 기록했다.
리맥스 재팬 관계자는 "올해 2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자금 조달이 쉬워졌고, 주가 상승과 상속세 증세 방안 등의 영향으로 투자금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도심 5구(지요다.미나토.중앙.신주쿠.시부야)의 사무실은 공실률이 낮아지고 임대료도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다"며 "마루노우치의 경우에는 공실률이 1.37%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찾은 일본의 비즈니스 중심가인 마루노우치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지어지고 있었다. KOTRA 일본지역본부의 오바 아리히로 부장은 "KOTRA 일본지역본부가 위치한 도쿄 마루노우치 빌딩 맞은편에 새로운 빌딩을 짓고 있는데 이곳의 한달 임대료는 3.3㎡당 5만4000엔에 달한다"며 "평균적으로는 4만~4만5000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동산 활황기 수준에는 못미친다. 리먼쇼크 이전에는 3.3㎡당 10만엔에 육박하기도 했다.
일본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경기상황이 전만큼 좋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내년 4월로 예정됐던 소비세율 인상을 2019년 10월로 최근 연기했다. 목표로 했던 2%의 인플레이션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미즈 교수는 "일본 경제가 여전히 좋지 않은 이유에는 생산성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며 "개인이 집을 사기 위한 지불능력이 개선되거나 기업이 비싸게 사무실 임대료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일본에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회사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본 사회는 최근 공가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이다. 일본은 지난 2010년까지 신규주택을 연간 100만가구씩 공급했다. 지금은 60만가구 수준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많은 편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시각이다. 일본에서는 오는 2020년이 지나면 전체의 25%가 빈집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4가구 중 1가구 꼴이 되는 셈이다.
시미즈 교수는 "건물이 낡으면 부수고, 재건축해서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수순"이라며 "문제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지을 원동력이 없어졌다. 그래서 공가가 늘어나게 됐고, 그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도심의 공동주택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시골에 있는 빈집은 부숴버릴 수 있는데 도심 고급 아파트의 경우 소유자의 5분의 4 이상의 동의가 없으면 재건축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건물이 1970년 고도경제 성장 시기에 많이 늘어났고, 그쪽이 슬럼화되는 것이 가장 문제다. 부술 수도 없고 재건축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서울도 큰 고층아파트가 많다. 그게 장래에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한국이 일본 부동산 시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미즈 교수는 정부가 부동산 수요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주말에 쉴 수 있는 집과 일터와 가까운 곳 등 집을 두 채 갖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인구는 줄어도 주택 수요는 늘어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주택 관련 세제 완화 등의 조치가 필요한 대목이다.
시미즈 교수는 이어 "기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선 경제상황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하고, 또 일본처럼 일단 완전히 쓸모 없게 된 공가 같은 경우는 보조금을 주고 무너뜨리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버블붕괴 상황으로 돌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 와세다대 박상준 교수는 "한국 부동산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버블상태에 있지 않고 또 버블로 들어갈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인구구조와 경제여견이 변하고 있는 데도 그걸 인지 못하는 정책당국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층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에서 일반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부동산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은 있을 수 없다"며 "때문에 대출여건을 완화시키거나 대출금액을 늘리는 식으로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은 작은 버블만 일으킬 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전셋값이 급등하는 건 사람들이 집을 사기를 꺼리고 월세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주택 구매를 꺼리는 건 부동산 가격이 과거처럼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건설회사나 임대회사가 월세를 놓는 것처럼 분양보다 기업차원의 임대를 늘리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월세에 사는 것을 자연스러워하게 되면, 오히려 건설경기도 살아날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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