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기계설비 관련법 재정비해야
2016.11.02 17:12
수정 : 2016.11.02 17:12기사원문
세상에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공짜'이고 '싸고 좋은 물건'이다. 건축물에 들어가는 냉난방, 온수급탕, 환기 등의 기계설비는 기본적으로 에너지설비이며 건축물 총에너지 소비 중 70% 이상이 바로 이 기계설비로 사용된다. 국내 전체 에너지 소비 중에서 약 20%가 건축물에서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기계설비에서의 에너지 절약 효과는 온실가스 저감으로 직결된다. 소비자가 직접 구입하는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과 달리 건설사가 결정해 설치하는 기계설비는 저렴하지만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중반부터 일정 환기횟수 이상을 의무화해 400만가구의 신축 아파트에 모두 전열교환 방식의 열회수 환기장치가 도입됐지만 낮은 성능, 소음, 결로 등의 많은 문제점으로 거의 작동되지 않고 있다. 원인은 불합리한 하도급 구조다. 동일 공사 현장에서 건축공사 72%, 전기공사 80% 이상으로 낙찰되는 데 반해 기계설비공사는 불과 55% 수준으로, 적정공사비를 훨씬 밑도는 금액으로 설비가 결정되고 공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전기공사는 건축공사와 함께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어서 원도급이 가능하나, 총 공사비에서 20%나 차지하는 기계설비는 에너지 소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관련법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계설비 관련법의 정비와 더불어 원도급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 방법으로는 분리발주와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를 생각할 수 있는데 1994년 행정쇄신위원회는 기계설비공사 분리발주를 쇄신과제로 채택, 예산회계법(현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기계설비공사 분리 발주의 근거조항을 신설했다. 이 규정을 근거로 지난 20여년간 정부기관 및 공공단체, 지자체 등의 공공발주기관에서 일부지만 기계설비공사 분리발주를 시행했다.
현 정부는 건설공사 분리발주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기계설비공사 분리 발주를 더욱 활성화하고자 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분리발주 시행 여부를 검토하는 의무화 규정을 추가해 2014년 국가계약법 시행령과 지방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에도 불구하고 분리발주 대상공사가 기계설비공사로 명시되지 않아 공공발주기관에서는 아직도 분리발주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는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가 공동으로 계약을 하는 주계약자공동도급제도를 2009년 시행했으나 지방공사는 2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 국가공사는 300억원 이상 종합심사낙찰제 대상공사 등으로 제한돼 있어 실효성이 저하되고 있다. 늦었지만 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기계설비공사 분리발주 의무화 및 주계약자공동도급 대상범위 제한규제 폐지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고효율 기계설비는 현재 바로 적용 가능한 온실가스 저감의 현실적 수단이다. 고효율 기계설비의 보급 활성화는 바로 정부의 의지와 정책에 달려 있다.
홍희기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